
수많은 앨범 속 옛 사진을 뒤적이다 보니 많은 생각과 추억이 교차되었다. 특히 그동안의 삶의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젊은 시절 꽃다운 나이에 시집을 온 부인(홍광자)에게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이었던 나를 따라 외지 생활을 하면서 슬하의 2남1녀를 모두 건강하고 바르게 교육시킨 부인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이 들었다.
특히 지금의 당진군수라는 자리까지 설 수 있도록 아낌없는 내조에 다시한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첫번째 사진은
첫번째 사진은 내가 초등학교 1학년 입학 당시인 1953년에 찍은 가족사진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8년 전 나의 초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당진에서 제법 컸던 현대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당시 아버지(이재안)께서는 당진우체국 체신 공무원으로 근무를 하셨으며 우체국 체신공무원으로 정년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셔서 집에 카메라도 있었고 나에게도 사진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이 난다. 사진에는 세살터울의 큰동생(계숙)과 작은 동생(향숙)만 있지만 그 뒤로 동생들이 태어나 우리는 모두 7형제가 됐다.
두번째 사진은
두번째 사진은 1966년 2월 서라벌대학 방송과 졸업사진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라디오방송의 중흥기를 맞이하고 있던 때였다. 내가 진학한 서라벌대학의 방송과도 대학기관으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학과였다. 졸업 후 라디오방송국에 입사하기로 확정되었지만 조부님께서 도시생활보다는 아버지의 길을 따라 공무원이 되길 강력히 희망하셨다. 더욱이 농사처가 많았기에 농사일을 하길 바라셨다. 결국 공직자의 길을 걷게 돼며 지금의 당진군수라는 막중한 책무을 맡게 됐다. 당시 공무원이 아닌 방송일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한다.
세번째 사진은 약혼사진이다. 1968년의 사진으로 그해 10월 결혼했다. 당시 조부님께서 장손의 결혼을 보고 싶으셔서 고모님들께 장손 며느리감을 찾으라는 분부를 내리셨다. 그때 대호지면에 사는 둘째 고모님께서 지금의 부인을 소개시켜주셨다.
마지막 사진은
마지막 사진은 결혼 2주년 기념으로 아산 현충사를 갔을 때의 사진이다. 당진읍사무소에서 근무할 때다. 당시만 해도 아산 온양 온천여행은 남들이 부러움을 샀었는데 1968년 결혼 후 신혼여행으로 다녀왔던 곳이기도 하다. 결혼 1주년에는 수덕사를 다녀왔다.
사진 속 장소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현충사 앞 정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곳에 앉아 미래를 그리며 서로 잘 살아보자고 약속했던 기억이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