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대만에 이어 전 국토가 구제역이란 가축전염병으로 초토화된 한국, 세 나라 모두 면적도 작고 축산 대국도 아니다. 섬나라, 반도의 끝에 위치해 지정학적으로는 전염병을 방어하기에 좋은 조건을 가진 듯하나 국가 경제가 휘청일 정도로 전 국민에게 피해를 안겨주었다. 하필이면 한국은 30년만에 찾아온 한파와 더불어 구제역이 발생, 전염병 전쟁에 투입된 공무원을 비롯한 모든 관계자들에게 큰 시련이었다. 구제역 발생에 관한 세계지도를 펼쳐 보면 우리가 구제역 청정국의 마지막 보루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우리와 접한 러시아의 연해주, 중국, 몽골은 구제역 발생국가다. 연해주는 대한민국의 1.6배 면적에 인구는 200만명으로 대부분의 영토가 비어 있어 아직도 50여두의 호랑이가 존재하고 러시아 중앙정부의 손길이 먼 지역으로 구제역에 대한 통제가 안되고 있다고 봐야한다.

중국은 우리와 동일한 품종인 연변황우가 동북3성을 중심으로 많이 사육되고 있다. 길림, 요녕, 흑룡강성 지역에 가보면 아직도 아무나 소, 돼지, 양 등을 집에서 잡아서 시장에 내다파는 지역으로 설사 구제역에 감염되었다 해도 유통이 가능한 지역이다. 백신 접종을 하고는 있지만 권장 정도이지 강제적인 통제가 안되고 있다.

방목사육과 유목생활, 드넓은 초원지대인 몽골과 내몽고 지역은 사람도 파악이 안되는데 전염병이야 말할 수도 없다. 소와 양에서 생산되는 생우유와 생고기를 먹다보니 브루셀라병이 만연해있고 주기적으로 구제역이 발생한다.

우리와 대치하고 있는 북한도 구제역이 발생하나 통제가 안되고 유통되는 실정이다. 내가 관여하는 대북지원사업 중에 양돈장 지원사업이 있어 점검차 가보면 북한은 식량난으로 곡물사료가 없어 양돈산업이 전멸하다시피한 실정이다.

마른 한우만 일소로서 농촌에 있고 정주영 회장이 갖다준 한우에게 곡물사료를 공급하지 못해 결국 굶어죽게 만든 상황이니 구제역 같은 가축질병에 신경쓸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 오히려 우리가 매몰하는 소, 돼지를 보고 저 아까운 고기를 묻는다고 안타까워했다는 주민들의 반응이 이해가 된다.

안동발생의 진원지가 되었던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후진국에서 경제개발이 진행되는 베트남과 태국은 축산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다. AI의 창궐 지역이고 사람의 사망이 빈번 할 만큼 가축 전염병에 대한 통제가 안되는 지역이다.

ASEAN 10개국 중 형편이 나은 베트남과 태국 외에 우리와 교역이 활발한 최빈국인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등은 가축 통계조차 없다고 보면 된다. 또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키르키스탄 등 CIS국가와 네팔, 파키스탄, 인도 등에서 외국인 고용자로 진출하는 국가들 대부분이 구제역 발생국이다. 유일하게 구제역 청정국가는 최근 청정국 지위를 획득한 일본,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가 아시아에서 유일하다. 이중 네 나라는 섬나라이고, 아시아에서 내륙과 접한 유일한 청정국이 한국이었다는 사실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구제역에 취약한 국가였는지 알게 된다.

2010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수가 4000만명이고 이들 대부분이 아시아권의 구제역 발생국 국민이다. 더구나 2차대전 이후 원조받던 후진국 중 유일하게 원조를 줘야하는 국가로 바뀐 한국이 올해에만 1조6000억의 ODA예산이 있고, 주로 상대해야하는 아프리카 대륙은 상황이 더 어렵다.

많은 결혼이민자와 가족들, 세계 10위로 성장한 수출 경제로 전세계를 누비는 수많은 무역인들과 관광객들이 6년 연속 세계최고를 자랑하는 인천공항을 이용하는데 이들 모두를 소독시킬 수도 없고... 구제역 청정국인 미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외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축산대국들이 청정국 지위를 잃은 한국 시장을 넘겨보는 상황이 되었다.

다가오는 중국과의 FTA에서 우리가 구제역을 못 막으면 농산물과 더불어 축산물도 들어올 수 있게 된다. 우리 국민이 1년에 소비하는 쌀이 약 420만톤, 가축 사료로 소비되는 곡물이 1700만톤으로 4배 이상을 더 소비한다. 이들 사료원료가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데 이러한 최악 조건에서도 지켜온 한국축산이 구제역 때문에 이제 풍전등화 신세가 되었다.

지난 겨울 구제역 때문에 사망하신 10명의 공무원과 수많은 부상자, 고향방문조차 거부했던 절박함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