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땅에 발을 들인지도 벌써 여러 달째다. 지난 해 11월이었다. 첫 걸음으로 당진터미널에 내렸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발길을 옮긴 곳이 지금 사무실을 쓰는 골목이다. 그날 점심을 먹은 식당에 단골이 되었다. 그간 사무실 여는 일로 바빴다. 당진은 바다가 있고 농토가 넓다. 산은 가지런하고 옹기종기 어여쁘다. 이런 생각이 늘 내 안에 머물지만 한가히 터를 둘러 볼 엄두를 못 냈다.

오늘 일요일, 한진포구를 들렀다. 당진항이 궁금해서 가 본다는 걸음이 다다른 바다, 서해 바다라고 다 얕지는 않나 보다. 흰 칠을 바른 작은 배들이 출렁이고 있었다. 닻이 채워져 한 자리에서만 울렁거렸다. 한 번 타 보고 싶다, 멀미는?

나는 당진이 낯설다. 포구 앞 발전소가 있는 공단을 나오다 ‘필경사’ 표지를 보았다. 누군가 바닷가에 절을 세웠다. 그 절이 멀지 않다. 좌회전을 포기하고 가리키는 절 쪽으로 올라섰다. 표지는 옹기종기 어여쁜 언덕 위로 앞서 갔다. 상록수 교회를 지난다. 멀리 상록수 마을회관이 보인다. 상록수! 필경사? 아차! 하는 느낌이 퍼뜩 일어서는 순간 한 건물이 지나쳤다.

필경사는 절이 아니다. 차를 되돌려 필경사로 진입했다.집안에는 트럭이 한 대 서 있다. 필경사는 옆집을 두고 있는데 그 집 자동차이겠다. 아무도 없다.

심훈선생기념관, 너르고 겸손한 처마가 먼저 보이고 왼편 흙집 초가 筆耕舍

놀랍다. 심훈선생께서 집 마당에 누워계신다. 무덤을 두른 6개의 흰 화분에서 프리지아 꽃향기가 무리지어 날려 온다. 어디서 놀란 참새가 후더덕 오른다. 혼자인 내가 더 놀란다.

필경사엔 아무도 없다. 집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고 손으로 유리를 감싸며 내부를 들여다본다.

작은 툇마루가 있고 방에는 옛날 양복 한 벌이 비스듬히 걸려 있다. 조금 전까지 글을 지으시던 선생께서 지금 포구 한 곳을 거닐며 바람을 쐬고 계실 것 같다. 필경사는 바다를 비스듬히 바라보고 있다.

그렇지, 채영신이 약혼자 동혁을 찾아 간 곳이 바닷가 마을이었을 거야. 지금 이 곳이 상록수의 바다야. 아 도대체 선생은 왜 이 곳까지 오신 걸까?

뒤란은 간격을 두고 언덕으로 오른다. 참새가 오르던 대나무 숲이 올려다 보인다. 하늘이 맑다. 뒤란을 돌아 나가 다시 무덤 앞에 선다.

선생께서 이곳에 계시는 줄 몰랐습니다. 너무 뜻밖이라 미처 인사드리지 못하였습니다. 그제사 눈을 감고 염을 올렸다. 안경 너머 선생께서 지긋한 표정을 지어 보이신다. 표정은 집 마당에 부조 조각으로 솟아 있다.

부조의 눈길이 머무는 곳, 필경사 입구에 상록수 조각상이 역광 속에 잠겨있다. 세 나뭇가지에 맺힌 열일곱의 나뭇잎과 그 앞에 놓인 의자가 한 쌍이다.

빈 의자는 아름다운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5월 햇살아래.

박문수 세무사

경북 김천 출생(61년), 구미에서 성장, 대구 심인고와 계명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산림문화제 시 부문 금상(제2회) 수상, 국세청 근무, 제46회 세무사자격시험 합격, 예산세무서 당진지서 맞은편 <박문수세무회계사무소>

(☎ 010-4219-2094, 041-352-81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