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절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곡식이 무르익고 하늘이 높아지는 추석을 앞두면 자연스레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특히나 무엇이든 내어주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 그립다. 넉넉하고 풍성한 어머니 품을 닮은 초가을, 조성분 할머니를 만났다. 6.25 전쟁을 겪은 조성분 할머니는 전쟁 통에도 13남매를 모두 건강하게 키워 낸 어머니다. 당시 우리네 여느 어머니가 그러했겠지만 조성분 할머니가 좀 더 특별한 건 13남매가 모두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신의 아이를 목 졸라 죽였다는 어느 아버지의 소식이 항간에 이슈가 되는 이 때, 조성분 할머니를 통해 부모와 자식의 인연에 대해 새삼 돌아보았다.
서른 갓 넘어 13남매
어머니가 되다
조성분 할머니는 합덕읍 합덕리에 혼자 살고 있다. 새집을 지어주겠다는 아들들에게 “혼자 사는 데 방 한 칸, 부엌 한 칸이면 족하다”며 한사코 거절하다 지난해에 결국 지고 말았다는 할머니는 2층으로 지은 예쁜 집에 홀로 사신다. 할머니가 합덕에 둥지를 튼 건 60년 전이다. 할머니의 고향은 덕산 삽교인데 21세 꽃다운 나이에 홍성으로 시집을 가셨다. 헌데 몇 년 지나지 않아 6.25 전쟁이 발발했고 전쟁터에 나간 남편은 소식이 끊겼다. 소식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할머니는 “제 정신이 아닌 채” 살았다. 몇 년 동안 남편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주변에서는 재혼을 권했고 할머니는 합덕에 살고 있는 지금의 남편과 재혼을 하게 되었다. 시집을 와 보니 새남편에게는 10명의 아이들이 있더란다. 군에 간 큰 아들부터 학교에 다니지 않는 어린 아이들까지 그야말로 북적이는 대가족이었던 것이다. 이후 금술 좋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에서 3명의 자녀가 더 태어나 할머니는 서른을 갓 넘은 나이에 아들 8명과 딸 5명, 13남매의 어머니가 되었다.
“어렵기야 말도 못했제. 애들은 많고 먹을 것은 없고... 그 때는 누구네 집 따질 것 없이 어려웠던 때였응께. 어느 날엔가 영감이 형편이 어려우니 갖고 있던 집을 팔아서 애들하고 먹고 살아야겠다는 소리를 하는 걸 들었유. 그런데 내가 절대 안 된다고 했지. 어렵더라도 갖고 있는 땅을 팔아서는 안 된다고. 그때부터 살림을 내가 맡았유. 힘들어도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욕심은 버리고 빚진 거 조금씩 갚아가며 애들을 키웠지유. 막내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쯤에는 형편이 좀 나아져서 대학도 보냈지유.”
그렇게 할머니는 허리띠 졸라매고 알뜰히 살림을 일궈 13남매를 모두 가르치고 키워 시집 장가를 보냈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아니라고 해서 서로 시기하고 다툼하는 걸 여태껏 본 적이 없유. 애들이 월매나 착한 지 말썽부리는 녀석이 하나 없었유. 큰 아들은 대학 교수고 신부님도 둘이나 되지유. 다들 제 몫하며 잘 살아유. 딸들은 일주일에 세 번씩 번갈아가며 찾아와 집 청소를 해줘유. 내가 무릎이 아파서 걷기가 힘들거든.”
“자식 수만큼 복도 늘어나지유”
할머니는 지난 세월을 되짚으면서 틈틈이 “남부끄러운 이야기를 다 했으니 어쩌냐”고 걱정을 하셨다. 전처 소생까지 13남매에게 모두 같은 사랑을 나눠 훌륭히 키워내셨으면서도 “별일도 아닌 걸 새삼스레 알리는 것 아니냐”는 할머니 앞에서 송구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리일까. 내가 낳은 자식과 나를 낳아 준 부모를 살해했다는 뉴스가 나올 적마다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사실마저 부끄러워 숨고 싶던 기분이 떠올라 할머니 앞에 할 말을 잃었다.
할머니는 “요즘 사람들은 어찌된 게 아이들을 낳으려고 하질 않는다”며 “우리 애들 뿐 아니라 젊은이들을 만나면 자식은 꼭 낳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나더러 큰 복 받았다고 해유. 애들 모두 잘 돼 사회에서 제 몫하고 사니께유. 아이들 수 만큼 복이 오지유.”
키울 적에는 힘이 들어도 사회에 필요한 사람을 길러내는 일은 중요하고도 큰일이라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따끔하다.
13남매가 모두 출가하고 할아버지마저 하늘로 보낸 요즘, 할머니는 나름의 여생을 즐기고 계셨다.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부지런함은 13남매를 키우면서 몸에 밴 것이다.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돈하고는 곧바로 기도에 들어간다. 결혼 후부터 성당에 다니는 할머니는 여행을 가서도 새벽 기도는 빠트리는 법이 없다. 집 안과 텃밭을 돌본 뒤에는 주로 경로당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적적함을 덜기 위해 대건노인대학에도 꼬박꼬박 나간다. 재밌고 유익한 강의를 듣는 일이 할머니에게는 큰 즐거움이다.
돌아오는 추석에는 선산에 13남매가 빠짐없이 모여 미사를 올린단다. 할머니는 추석이 되면 아이들이 데리러 올 거라며 넉넉한 웃음을 지으셨다. 인터뷰를 마치고 마을 어귀를 빠져나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할머니는 13남매를 마중하듯 기자의 가는 뒷 길을 살피셨다. 오늘 저녁에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자식들 소식을 기다릴 부모님께 전화 한 통 걸어 보는 게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