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지의 꿈

노정길

초락감리교회 담임목사

우리집에는 거위 한쌍과 몇쌍의 화초닭이 있다. 전에는 오리, 기러기, 오골계, 황금계, 긴꼬리닭도 있었으나 '풍(風)'에 좋다고 해서 오리, 기러기들은 필요한 사람들에 나눠주고 아이들이 구경한답시고 문을 열어 놓는 바람에 금계, 비둘기는 날려보내고 지금은 가식구가 단촐해졌다.

그런데 얘네들이 밥만 축내는 무위도식자가 아니고 무척 큰 일을 해내는 일꾼들이다. 우리집에서 나오는 음식찌꺼기 뿐만 아니라 매 주일 100여명이 먹는 공동애찬에서 나오는 음식찌꺼기의 해결사인 것이다. 먹다 남은 고기나 물고기 뼈, 애들이 먹다 남긴 과자부스러기, 종이팩에 남아있는 우유는 진돗개 뚱순이 차지, 밥알이나 베어먹다만 과일조각은 쟈보닭의 몫. 맨나중 김치건데기, 사과·배 껍질, 포도 껍질까지는 거위차지다. 귤껍질, 옥수수 속 알갱이, 보리차 울겨낸 차봉지 정도만 퇴비장으로 가고 라면국물 한방울도 거위, 닭들이 처리해 준다.

우리집에서 짐승들은 넓은 운동장, 풀밭에서 같이 사는 한 식구이자 열열한 환경운동가들이다. 닭똥도 약에 쓴다(?)고 화분마다 생기를 주고 꽃밭이 아름답고 평화롭다. 옛날 초락도가 바닷가의 한섬일 때 더 깊은 바다 쪽에 점점이 떠있는 세섬이 있었다. 이름하여 계두도(鷄頭島). 허나 지금은 대호간척사업으로 대호만 담수호쪽 바둑판같이 그어논 논복판에 시커먼 솔밭 그대로 서있는 섬 아닌 섬이 되어 남아있는데 닭이 훼치고 운다는 뜻의 '닭고지'-'달구지'가 바로 여기다.

그중 아래쪽 큰 달구지에 목사들이 은퇴해서 모여 살자고 조그만 땅을 구입해 놓은 것이 있다. 앞으로 5, 6년이 지나야 모여들겠지만 40년간의 목회사역을 마치고 그보다 더 긴 우정의 결실로 인생말년의 외로움을 달래는 말벗들이 되자는 꿈을 꾼 것이다. 바다(호수이지만)가 보이는 전망대 원두막 자리도 있고 공을 튀길 수 있는 운동장 자리도 있고 아침 저녁으로 땀흘려 흙을 일굴 채전자리도 있다. 서해의 낙조가 일품이라지만 여기서 도비도로 향하는 논길 갈대숲은 환상적인 한폭의 그림이다. 더 놀라운 것은 사람 인기척에 놀라 푸드덕 날아오르는 장끼 까투리를 따라 이 나무 저 나무 건너 뛰어다니는 청솔모의 새까만 눈, 인근 양어장이나 논물가에 마음 뺏기는 왜가리떼가 푸른 소나무위에 하얗다. 이 아름다운 신의 조화를 말로 다 할 수 없는 축복에 겨워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자연 그대로 있는 그대로 두고 싶은 곳이다.

내년쯤에는 흙벽돌 찍어 조그만 토담집을 지어 떨어진 나뭇가지 군불지피는 '겨울집'을 생각해본다. 이 가을에는 밤나무 몇그루를 심어야지. 감나무도 빠뜨리지 말고, 그때도 함께 살 쓰레기 해결사들의 보금자리도 미리 잡아 놓고, '당진 자연생태학교'를 꾸며볼까? '당진 귀농학교'를 세울까? 땅주인이신 그분께 물어보고 있다. 부언하는 말은 이것은 실제상황입니다. 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