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잿빛하늘의 당진이여!

노정길 / 초락교회 담임목사

50년대 후반기 모두가 어렵게 살 때 내가 살던 동네의 형들은 자주 자주 피를 팔곤 했었다. 대학병원에 가서 피를 뽑아 돈을 받고 영양제 같은 것을 얻어가지고 왔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술도 사먹고 반짝거리는 구두를 사서 징을 박아 챙챙거리며 뽐내고 다녔었다. 우리들이 부러워했던 멋쟁이 형들은 얼마 못가서 폐인들이 되어갔다. 얼굴은 누렇고 전혀 일들을 하지 않고 놀고 먹었다. 계속 매혈(賣血)한 형들은 4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은 걸로 기억된다.

나는 오늘 당진이 피를 팔아 멋을 부리는 것 같아 안타깝고 슬프다. 잘 살겠다고 개발하고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정치를 하는데 하나밖에 없는 생명은 병들어 죽지 못해 산다면 개발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몇사람의 업적과시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억울해 눈물 짓는다면 그 정치행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오늘이 있기까지 근대화의 뒤안길에서 희생양이 된 것은 농어민과 노동자들이다. 공업입국, 수출주도형의 경제구조 속에서 수반된 농어민의 희생은 마땅히 나라가 책임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은 개발의 불이익을 농어촌이 떠안아야 한다면 이건 너무나 억울한 일이다.

당진화력발전소 5호기와 6호기의 증설문제도 잿빛하늘만큼 답답하고 우울하다. 보령화력발전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최신식 기계설비라 해도 4호기의 가동까지도 자연의 자정능력이 의심되는데 계속해서 5·6호기가 증설된다고 가정하면 생명을 해치는 오염피해는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그래도 사람은 살겠지. 그러나 10년 이상 공해피해를 호소하다가 견디다 못해 한집 두집 이사가고 이사갈 능력없는 사람들만 띄엄띄엄 남아있던 폐허처럼 변한 울산 어느 동네처럼 안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리고 지방자치제가 무슨 소용이 있나. 사전에 알고서도 군민들에게는 쉬쉬하고 거짓말로 얼버무리는 지도자들. 누구를 위한 공무원들이며 여기가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양심은 있는지 묻고 싶다.

158억원을 당진화력발전소로부터 받아 종합체육관, 문예회관, 버스터미널 건축에 쓰겠다는 구상은 피를 팔아 먹고보자는 발상 아닌가. IMF가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어려운 때에 긴축예산으로 국민들에게 용기를 줘야 할 행정기관이 한술 더 뜨는 것은 꼴불견이다.

이젠 좀 덜 갖고, 덜 쓰고, 좀 불편하게 사는 길이 함께 사는 인류공존의 길일진데 배웠다는 사람들의 의식이 이 정도니 개탄스러울 뿐이다. 특히 지도자에게 개발철학이 없다는 것은 내일의 희망이 캄캄한 밤중이다. 이젠 믿을 사람이 없다. 공무원도, 군의원도. 이젠 더이상 뺏기지 말아야 한다. 국민 모두에게는 행복추구권이 있다. 병들어 고생하기 보다 사전에 건강을 지켜야 하고 문화혜택은 늦어도 자연혜택을 받고 누리고 살아야 그나마 조금은 공평하지 않는가.

빨래줄을 닦으면 걸레가 새까맣고 낙수물은 먹물을 풀은 것같은 일은 예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콩깍지 영글지 않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다같이 태풍을 맞고도 다른 곳은 평년작인데 유독 석문 들판만 흉작인 것은 이유가 뭘까? 내년에도 이렇다면 역학조사를 해야 할 문제다. 검뎅이는 고대·당진·송산·송악에 떨어지고 숨쉬기가 역겨운 아황산가스는 석문일대에 자욱하게 퍼져도 사람들은 쉽게 길들여져 1년, 2년 견디고 살겠지, 그러나 10년 후에는 문제가 없을까.

호소하기는 이 정도로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에는 지역마다 소규모의 발전시설로 그 지역의 필요를 충당하지 우리같이 대용량의 발전소를 세워 무시무시한 철탑으로 장거리 송배전하는 일은 없다.

공무원들에게 묻고 싶다. ‘공복(公僕)으로서의 사명감은 있소?’ 민심이 천심인 것을 정치지도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더이상 농촌을 파괴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순박한 당진군민들이여 어리석게도 당하지만 말고 일어서야 하고 뭉쳐야 하고 뺏기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군민의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아! 슬픈 잿빛하늘의 당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