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그 사람이 행동하므로 그 사람이 무슨 의도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실존하는 인간으로 오심이 성탄이다. 생각이 행동으로 나타남이 성탄임을 말할 수 있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생각을 한다고 해도 실천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그 좋은 생각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관념으로만 인간을 사랑하심이 아니라 실재 행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우리가 만질 수 있도록 오셨다. 우리 인간이 배고프고 목마른 고통을 함께 나누시려고 오셨다. 물론 깨달아야 생각하게 될 것이지만 깨달은 것만으로 생각한 것만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깨달음과 판단한 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김이 성탄이다. 사랑은 표현함으로 사랑을 보이듯이 하나님 됨은 인간으로 오심으로 하나님 됨을 우리 유한한 인간에게 무한하신 하나님의 참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모습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사건으로 기록되게 되었다. 그래서 세계 인류 역사의 기 점을 예수 오신 날로부터 잡게 되었으리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모두 앞에 많은 사건과 해결해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인류가 공동으로 멈추어서는 안 될 일들이 참으로 많이 있음을 우리는 인식하고 있다. 생태학 문제, 자원의 문제, 인간출생 문제, 에너지 문제, 정치문제, 종교문제 등등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성탄의 정신은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심 같이 나를 포기하는 정신일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소유한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성탄일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분단된 역사가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안전하게 철거 되려면 300년은 걸려야 함이 우리가 지니고 있는 현재의 과학 수준인 것이다. 성탄의 정신은 정직을 아기 예수에게서 배워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인내의 실천은 하늘 영광을 포기한 아기 예수께서 말 구유에 나신 모습에서 본받을 수 있다고 성서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현재 우리는 성탄을 좋은 명절로 보내는 것만이 아니라 성탄의 정신이 우리 모두의 삶 속에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 성탄의 계절이 즐거움으로 우선 느끼게 됨은 서로 평화를 존중하는 마음이 소중하다는 표현으로 나타나는 한 단면인지도 모른다. 여러면에서 우리 모두는 성탄의 때에 생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고 먼저 사랑하는 실천함이 중요함을 인식하고 이번 성탄은 보람있고 뜻있는 성탄을 맞는 계절이 되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