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5일 어린이날부터 8일 어버이날, 15일 가정의날, 21일 부부의날까지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본지는 5월 한 달 동안 4회에 걸쳐 다양한 형태의 건강한 가족 이야기를 보도한다. 크고 작은 어려움을 현명하게 이겨내고 더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한강덕(40, 르노삼성부품 당진대리점 대표) 씨는 4년 전 지인의 소개로 결혼 상대를 만나러 중국에 가게 됐다. 처음엔 중국에 가서 여자를 만나보지 않겠냐는 말에 손사래를 쳤다. 물론 어느덧 노총각 대열에 들었으니 결혼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늘 일에 쫓겨 결혼이 자꾸만 미뤄지고 있었다. 보다 못한 지인이 반 강제로 비행기표를 끊었고 한 씨는 얼떨결에 중국으로 건너갔다.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그 중에서 아내가 가장 눈에 띄더라고요. 환하게 웃는 모습도 예쁘고 적극적이고 명랑한 성격도 마음에 들었어요.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는데 아내에게 ‘만약에 내가 병이 들거나 다쳐서 병원에 누워 있게 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어요. 그런데 아내가 망설임도 없이 ‘당연히 내가 벌어서 먹여 살려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거예요.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은 생각을 하는구나 싶어서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죠.”
국제결혼에 대해 오랫동안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내 왕진리(26, 중국) 씨도 마찬가지였다. 한류 열풍으로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한국드라마를 보며 막연하게 한국에 가서 살면 좋을까 하는 생각은 해보았지만 국제결혼을 마음먹고 선자리에 나온 건 처음이었다.
“그냥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에 나갔죠. 그런데 (남편이)듬직하고 좋더라고요.”
처음에는 왕진리 씨의 아버지 반대가 심했다. 남편 될 사람이 딸보다 나이도 많은데다가 먼 타국으로 막내딸을 보낼 생각에 걱정이 앞선 것이다. 하지만 한상덕 씨를 한 번 만나보고 난 뒤에는 반대한다는 말을 꺼내지 않으셨고 아들(재성, 4)까지 낳아 행복하게 사는 지금은 누구보다 든든한 사위의 지원군이 되었다고.
아내의 한국 정착 돕는 남편
그렇게 두 사람은 국경을 초월한 사랑으로 결혼해 2009년 9월25일 왕진리 씨가 남편의 고향 한국으로 건너오게 됐다. 하지만 정작 어려운 과제는 입국 후부터 시작됐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니까 너무 답답하고 심심했어요. 지금 알게 된 다른 이주여성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같은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연락하며 지냈다고들 하던데, 저는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거든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한국에서 생활하게 된 아내에 대한 고민은 한상덕 씨도 마찬가지였다.
“얼른 한국 생활에 적응을 시켜줘야 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여기저기 알아보다 당진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알게 됐어요. 그때는 센터가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6개월 후에야 한글교육이 시작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찌감치 등록을 해 놓고 아내에게 6개월만 참자고 했죠.”
그 사이에 한 씨는 거실 벽에 ‘가나다라’를 적어 놓고 아내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내를 돕겠다는 생각에 제가 한글도 가르쳐 봤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결혼 후 이듬해 봄부터 아내가 센터 한국어학당에 다니면서 한국생활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더군요. 친구들도 만나고 새로운 것들도 배우니 얼마나 재미있었겠어요. 간혹 다른 다문화가정 이야기를 들어보면 외국인 아내가 도망이라도 갈까봐 집에만 가둬두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 잘못된 생각이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인데, 집에서 혼자만 어떻게 살아요. 외국인 아내와 얼마나 행복하게 한국에서 살 수 있으냐의 관건은 모두 남편하기 나름이에요. 남편이 적극적으로 아내가 한국생활에 재미를 느끼도록 도와야죠. 그 중에 첫 번째가 한국말 배우기와 친구 만들기예요.”
왕진리 씨도 “처음에는 한국생활이 갑갑했는데 센터를 다니면서 친구들이 생기니까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한강덕 씨는 아내가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형편이 되는 한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편이다. 얼마 전부터는 아내가 춤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일주일에 두 번 학원에 간다고.
“저는 기타를 배우거든요. 아내는 춤을 배우고 싶다길래 그러라고 했죠. 다문화센터에서 운영되는 다문화가정봉사단 활동도 아내와 함께 다니기 시작해 올해부터는 단장도 맡게 됐어요. 다문화가정이라고 다를 거 없죠. 여느 가정처럼 부부가 여가생활 함께하고 즐기며 사는 게 행복하게 사는 거 아니겠어요?”
세대차, 문화차 극복은 대화로
20년 넘게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에서 다른 교육을 받고 자란 두 남녀가 함께 사는 것은 일반 한국 부부와는 역시 다른 점이 있었다. 더군다나 여느 다문화가정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한강덕 씨와 왕진리 씨 역시 띠동갑이 넘는 나이 차이 때문에 부딪히는 일도 있다. 하지만 부부는 모든 문제는 부부이기 때문에 당연히 겪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문화가정이기 때문에 특별할 것은 없다는 것.
“안 싸우고 사는 부부있나요. 그래도 이 사람이 외국인이라서 생기는 문제라고는 보지 않아요.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 생각하는 거죠. 사실 엊그제도 싸웠어요. 작년부터 회사 일을 도와주기로 해서 회계일을 조금씩 가르쳐줬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게 서운해서 제가 화를 좀 냈죠. 그래도 아내 성격이 워낙 밝아서 금방 화해를 하게 되요. 곰하고는 못 산다잖아요. 우리 아내가 좀 예쁜 여우예요(웃음).”
“나중에 알고 보면 서로의 말을 잘 이해 못해서 오해를 한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대화를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처음 결혼해서는 설거지도 집안일도 잘 도와줬는데 요즘은 좀 드물어졌죠.(웃음) 그런 거 빼면 뭐, 서운한 거 없어요. 그쵸~?”
아내가 한국말이 좀 서툴 뿐, 결혼한 지 5년차 되는 이 부부는 누가 봐도 한국 부부다. 다문화가정이라고 하면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이들에게 한상덕 씨는 “결혼해 아이 낳고 살면 다 같은 부부”라며 선입견을 갖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또 “더 부족할 것도 더 넘치는 것도 없는데 아이들에게 다문화가정 아이와는 놀지 말라고 부추기는 어른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