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키도 크고 덩치도 크니까 성격도 우락부락 할 것 같죠? 호호호. 그런데 실제로는 전혀 아니에요~ 제가 얼마나 여성스러운 데요! 학창시절 키가 크다는 죄로 농구선수로 발탁돼 프로선수 생활까지 했지만 사실 제 꿈은 미대생이었어요.”
이경규(63) 씨는 같은 연령대 여자들과 비교해 키도 크고 손도 크다. 남다른 키는 어린시절부터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띌 정도였단다. 그런 이 씨의 타고난 체격이 중학교 시절 체육교사의 눈에 띄어 농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릴 적부터 미대에 가서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단다.
“그런데 사는 게 내 마음대로만은 되지 않더군요. 얼떨결에 시작한 농구로 고등학교까지 가게 됐고, 졸업 후에는 바로 제일은행 실업팀에서 선수생활을 했어요. 그때는 여자농구 실업팀이 5~6개밖에 없던 시절이었어요. 선수생활 이후 제일은행에서 몇 년 근무를 하다 남편과 결혼해 귀농을 하게 됐죠.”
결혼 후에도 그녀가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살던 미술에 대한 꿈을 펼치기는 쉽지 않았다. 귀농을 하면서 남편과 함께 소 키우고 돼지 키우느라 바빴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육아와 살림이 늘어나 여느 주부들처럼 자신의 꿈은 뒷전이 되었다.

“30년 전에 남편과 함께 여기(신평 금천리)에 터를 잡았죠. 지금은 키 큰 여자들도 많지만 그때만 해도 179cm인 저는 여자 중에서도 드문 장신이었어요. 시골 마을에 키 큰 도시 여자가 내려왔으니 동네 분들 사이에 화제가 됐었죠. 주변 분들은 ‘저 새댁이 몇 년이나 버티나 보자’는 말씀들을 하셨대요.”
동네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그녀는 남편과 함께 젖소를 키우는 일부터 시작해, 양돈까지 30년 가까이 농촌생활을 해왔다. 이제는 근방에서 보람농장이라는 이름이 알려져 토박이 못지 않게 ‘당진 사람’이 다 됐단다.
엄마의 화려한 외출이 시작되다
이경규 씨는 딸들을 모두 시집보내고 난 뒤, 오랫동안 가슴에만 간직해 왔던 꿈을 펼쳐 보기로 결심했다.
“딸들도 다 키워 여우살이를 끝냈으니 이제 나만의 시간을 가져도 되겠다 싶었어요. 남편도 딸들도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었고요. 10년 전에 양광용 작가가 운영하는 벌수도예공방에서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꿈을 향해 조금씩 도전을 시작했죠. 그러다 흙으로 만든 인형, 토우를 알게 됐고 얼마동안은 토우에 빠져 전국을 쫒아 다녔어요.”
그러던 중 5년 전 우연한 기회에 천연염색을 알게 됐고 공예연구회인 ‘트로이목마’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본격적인 미술가로의 꿈이 시작됐다.
“청주에 친구를 따라 갔다가 천연염색을 알게 됐고 일주일에 한 번씩 청주를 오가며 천연염색을 배웠어요. 그러던 중 서울로 염색할 천을 사러 갔다가 트로이목마를 알게 됐죠. 트로이목마는 천연염색 중에서도 ‘문양염’을 연구하는 연구회예요.”
그녀는 연구회 전시회에 출품했던 작품이라며 커다란 이불을 꺼내어 보였다. 쪽빛으로 곱게 물든 이불 위에는 백제시대 전통문양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것 마냥 염색돼 있었다.

“흔히 염색이라면 천을 통째로 담가서 색을 내는 침염과 학창 시절에 한 번쯤 해보는 홀치기염을 떠올리실 거예요. 문양염은 거기서 더 나아간 기술이에요. 문양을 내고자 하는 부분을 실로 꽁꽁 싸매 문양을 만들어 나가는 거죠. 염색물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해 실을 꽁꽁 동여매다 보니 손에 굳은살이 안 베인 곳이 없을 정도예요.”
천연염색 강사자격증도 취득했다는 그녀는 “오랜 세월 꿈으로만 간직했던 일을 하며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양파물을 들이기 위해 양파껍질을 까느라 손끝이 맵고 염색물을 끓여대느라 여름이면 진땀을 빼야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행복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경규 씨는 “취미생활로 시작했기 때문에 단체 체험객을 받을 만한 여력은 되지 않지만 혹시 천연염색이나 토우, 도자기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정보를 나누고 교류를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