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동안 5억원 투자, 70여종 신문·잡지 수집
“신문은 역사의 기록, 모든 이의 추억을 모아요”
송산의 한 평범한 아파트, 현관문을 열자 입이 떡 벌어졌다. 집주인 김명곤 씨도 범상치 않은 자신의 집에 손님을 맞이하며 멋쩍은 듯 웃는다.
“웬 화성인인가 싶으시죠? 하하하. 제가 사는 법이 좀 특이해요.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생각해주세요.”
현관부터 집안 가득 천장높이까지 쌓여 있는 건 다름 아닌 신문이다. 전국일간지는 물론이고 지역신문, 각종 시사잡지까지.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이 신문이 쌓였다. 일부는 김 씨의 보물 1호라는 합쇄본이다. 양장제본까지 한 신문이 연도별, 일자별로 정리되어 있다. 사원 아파트에 부엌과 화장실, 1평 남짓 되는 잠자리 공간을 제외하면 모두가 신문이다.
그가 모은 신문들은 집 외에도 임대한 인근 40평 건물을 채우고도 모자라 고향집에 실어나른 양이 5톤 트럭 3대 분량이란다. 26년동안 모은 신문이라니, 가늠이 되질 않는다.
“신문을 수집한 건 86년부터예요. 그동안 신문 사느라 쓴 돈만 따져도 5억원 가량 될 거예요.”
신문기사 보며 세상을 봤던 시골 아이
김 씨의 ‘신문사랑’은 중학교 시절 시작됐다. “중1때 친구와 함께 학교 게시판에 레이건 대통령이 당선됐다는 신문기사가 붙어 있는 걸 봤어요. 그때 친구랑 대통령 이름이 틀리냐 맞냐를 놓고 한참동안 입씨름했던 게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요. 또 제가 사회와 국사 과목을 가장 좋아했어요. 무엇보다 교과서에 실린 옛 신문이나 보도사진을 보는 걸 좋아했죠. 국사 교과서에 실렸던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사진을 보면서 ‘이렇게 높은 건물을 만들 수 있구나’하면서 매일 들여다보곤 했죠.”
어린 김명곤 씨에게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이었다. 전남 순천 시골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에게 신문에 실리는 세상이야기는 늘 흥미진진했다. 그렇게 처음에는 버스에서 누군가 두고 내린 신문에 실린 사진을 오려 보관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신문을 스크랩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직업군인을 제대한 이후 본격적인 신문 모으기가 시작됐다.
“제대해 부모님 농사를 도우면서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신문 스크랩을 하다가 민간 최대 제철소가 당진에 생긴다는 광고를 봤죠. 그게 바로 옛 ‘한보철강’이에요. 곧장 이력서를 내고 합격해 당진에 이사를 왔죠. 신문 덕택에 직장도 얻은 셈이죠.”
당진에 이사 온 뒤, 그는 본격적인 신문 수집을 시작했다. 70여종의 신문을 모았다. 배달도 시키고 일부는 직접 당진, 서산 신문배급소를 돌아다니며 신문을 가져왔다. 한보철강이 문을 닫고 현대제철이 들어서는 사이에도 그의 신문 수집은 계속됐다.
신문은 역사 기록물, 신문수집은 역사놀이
“어느 날, 수집이 뭘까 고민을 해봤어요. 제가 내린 결론은 수집은 ‘역사놀이’라는 거예요. 우표나 동전, 무엇이든 모으는 건 역사의 흔적을 모으는 일이죠. 10년 뒤, 30년 뒤에 차곡차곡 모아온 수집품을 다시 꺼내어 본다면 세월의 변화가 고스란히 살아나겠죠.”
사회 전반의 사건을 기록한 신문은 그 어떤 책만큼 중요한 역사 기록물이다. 그러니 신문을 모은다는 건 역사를 모으는 것. 또 그 일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니 김 씨에게 신문 수집은 ‘역사놀이’란 것이다.
“신문에 실린 이야기들은 우리가 함께 아는 혹은 누군가의 이야기잖아요. 이야기는 비극이던, 희극이던 세월이 흐르면 추억이 되죠. 세월이 흐른 뒤, 함께 보면 정말 재미있고 의미도 있을 것 같지 않나요?”
김 씨는 “파리의 루브르박물관도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도 결국에는 수집가들이 없었다면 유물들은 모두 땅 속에 파묻혀 함께 공유할 수 없어졌을 것”이라며 “단순히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는 아니지만 그만큼 역사를 기록한 신문을 모으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7월 김 씨는 전남 곡성에 그동안 모은 신문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신문박물관을 열고 혼자만 즐기던 ‘역사놀이’를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