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리가 불티나게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 밥 한 술 뜨면 ‘딱’하고 돌이 씹히던 그 때, 조리는 주방 필수품이었다. 농한기가 되면 주민들은 가가호호 신우대(조릿대)를 손질해다가 섣달 보름, 설날을 앞두고 조리를 엮었다. 조리 만들기는 구룡리(현 구룡동)에서도 도곡마을이 특히 유명했다. 조리를 사기위해 대호지에서 새벽부터 찾아오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대호지에서 조리 사러 오기도
겨울철 꽤 짭짤한 농외소득을 올리던 조리 만들기가 세월이 흘러 플라스틱 조리가 생겨나고, 도정기술이 발달하면서 대나무 조리를 만들어 파는 농가가 하나 둘 사라졌다. 그렇게 1980년대 중반 무렵부터 끊겼던 조리 만들기를 5년 전부터 마을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당진에서도 구룡리 도곡 조리는 유명했지. 한 100년은 됐을 거여. 농한기엔 집집마다 식솔들이 조리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어. 시대가 변하면서 조리를 만드는 풍습이 마을에서도 사라질 것 같아서, 지금은 설 선물용으로 마을회관에 주민들이 모여 복조리를 만들게 됐어. 마을의 전통, 미풍양속으로 남겨야 하지 않겄어?”(박홍 노인회장)

대나무를 엮던 젊은 손들마다 이제는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20년 넘게 조리를 만들지 않았는데 용케도 손은 모든 과정을 기억하고 있었다. 거친 대나무를 몇 시간 째 만지다 보면 손이 닳을 것만 같은데도 감각이 무뎌질세라 장갑도 끼지 않는다.
한기남(76) 할아버지는 “손목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맨손으로 엮으면 손이 닳는 것 같다”며 “그래도 튼튼하고 좋은 조리를 만들려면 장갑을 끼는 것 보다 낫다”고 말했다.
말리고 불리고 반복… 열흘 이상 신우대 손질
조리를 만드는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1월(음력 12월) 즈음 되면 대나무를 손질하기 시작한다. 대나무 잔가지를 쳐낸 뒤 껍질을 벗기고 얇게 쪼갠다.
양낙성 통장은 “매끈한 조리를 만들기 위해 일일이 마디를 깎아내고 물에 불렸다가, 건조시키는 과정을 적어도 3회 이상 반복해야 한다”며 “이렇게 해야 대나무가 부드러워져 잘 휘어진다”고 말했다.
대나무를 손질하는 이 과정에만 열흘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지금은 조리를 주방용품 보다는 ‘복 받으라’는 의미에서 복조리라는 이름으로 새해 선물로 주고 받는다.
마을 주민들이 한데 모여 복조리를 만드는 이날, 남자 어르신들은 방안에서 복조리를 엮고, 여자 어르신들은 점심상을 차렸다. 주민들은 한창 구룡동 복조리가 전성기를 누리던 그 시절, 옛 추억에 잠기는 한편 복조리 한가득 복을 담길 바라며 새해맞이 설렘으로 가득했다.
[인터뷰] 구룡동 출신 복조리 장인 임건영 씨
“남다른 손재주로 전통 조리 엮어와”
생활의 달인, 스타킹에 달인으로 출연
마을전통 계승토록 행정적 지원 필요
“어렸을 때 집에서 조리를 만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때 배운 기술로 지금 서울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요.”
복조리 달인으로 SBS ‘생활의 달인’과 ‘스타킹’에 출연한 적이 있는 임건영 씨는 어린시절 마을에서 가족들과 함께 복조리를 엮던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조리를 만들기 시작한 10살 무렵부터 남달리 손재주를 보이던 그는 스물일곱이 되던 해에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해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다양한 크기의 복조리를 모아 꽃을 만들기도 하고, 대나무로 엮은 새, 나비 등을 만드는 대나무 공예가로 활동 중이다. 손수 복조리를 엮어 만든 그의 작품은 수백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임 씨는 그동안 인사동에서 하는 전국 공예 대회에서 4번이나 우승을 하고, 이제는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인사동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하고, 시청이나, 주민센터에서 하는 취미교실 강사로 활약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구룡동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이 전통을 잊지 않고 살아왔다”며 “플라스틱 조리, 중국산 조리로 한국의 전통 조리가 맥을 못 추는 상황에서 훌륭한 우리 문화인 복조리 만들기를 계승·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전문가인 만큼 임씨는 전국에 유명한 조리를 다 찾아 다녔지만 구룡동 조리만한 게 없다고 말한다.
“안성에는 복조리마을(구메마을)이 있을 정도로 전통을 잇기 위한 행정적인 지원도 많아요. 하지만 조리 안쪽으로 대(손잡이)를 이기 때문에 실생활에서 쓸 때 쌀이 많이 끼지요. 죽세공품으로 유명한 담양의 조리가 구룡동의 조리와 비슷하지만 날대(가로 축이 되는 대)를 두 개 씩 6개를 넣는 구룡동 조리에 비해 촘촘하지 않고 엉성하지요.”
임 씨는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구룡동 조리를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 시에서도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며 “마을의 전통을 이어나갈 청년이 줄어들면서 복조리 만들기가 사라져 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