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매주 수요일 아침, 책 읽어주기 활동을 하러 근처 초등학교 1학년 교실로 출근을 했다. 열심히 골라서 들고 가는 책이라 그런지 읽어줄 때마다 반응이 좋은 편이었다. 그 중에서도 얼마 전 ‘내 코딱지’라는 그림책을 보여줬을 때, 그 어느 때보다 유난히 반짝이던 아이들의 눈빛이 지금도 생생하다.

주인공 여자 아이는 늘 코딱지를 판다.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성의를 다해 파낸 코딱지를 그냥 버리기가 아쉬워 보관함에 넣어둔다. 아이는 코딱지를 성심껏 다듬은 후 예술품 수준으로까지 승화시킨다. 내가 책을 읽어주는 동안 아이들은 “저런 더러운 짓을!” “나도 저래본 적 있는데?” “그건 부끄러운 일이죠, 선생님!” “나도 한 번 해 볼래요”하는 말들을 재잘거리며 책장을 넘기는 내 손길에 푹 빠져든다.

이런 책을 만날 때마다 내 어린 시절이 다시 피어난다. 나도 어릴 때 코딱지며 손톱, 발톱 따위를 모아 본 적이 있다. 딸자식을 교양인처럼 키우고 싶어 하신 부모님은 내가 그럴 때마다 무척 못마땅해 하셨고, 그래서 나는 자라는 동안 끊임없는 질타와 잔소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때의 경험 하나하나가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내게는 트라우마가 되었다. 나는 부모의 뜻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그럴듯한 자리 하나 차지한 엄친딸도 되지 못했고, 그렇다고 내 주장을 확실히 펼쳐서 내 세계를 이룬 멋진 반항아도 되지 못했다. 이도저도 아닌 그저그런 인간밖에 되지 못했다고 자책하다가 어느 날 덜컥 결혼을 하고 덜컥 아이를 낳은 것이다.

맑은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잘 키워야지 잘 키워야지 하고 읊조렸던 건 사실, 나처럼 살게 하지 말아야지 내 부모처럼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말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뾰족한 수가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막막함, 두려움, 불안함 들이 시시때때로 나를 찾아왔다. 각종 육아서를 이것저것 읽어보고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나조차도 확신하지 못하는 말들에 끌려다닐 무렵, 다행히도 좋은 이웃들을 만나게 되었다. 햇수로 16년 동안 활동하고 있는 어린이책 모임 안에서 좋은 책과 좋은 벗들을 알아갔고, 그 안에서 나는 비로소 불안함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숨을 고를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만난 어린이책은 여태까지의 내 삶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했다. 무한한 긍정을 지닌 삐삐와 앤, 세상 끝까지 사랑을 놓지 않은 몽실언니, 소심한 몸과 마음으로 세상을 찬찬히 바라보는 윌리,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세상을 바꾸려하는 태일이. 셀 수 없는 많은 아이들이 그림책과 동화에서 빠져나와 내 곁에 앉았다. 그리고 내 손을 잡더니 내 눈물을 닦아주고 내 마음을 만져주었다.

오랜 시간 활동하다보니 어린이책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곤 한다. 어떤 어린이책이 좋은지, 아이를 똑똑하게 공부시키는 책 목록은 무엇인지, 그렇게 오래 활동했으니 아이가 책을 잘 읽고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는지 하는, 비법을 주문하는 질문들이 많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고 그래서 현명한 아이로 자랄 수 있는 비결이란 의외로 단순하고 쉽다. 아이를 잘 들여다보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아이와 함께 어린이책에 빠져들 수만 있다면 아이는 행복하게 책을 읽게 될 것이다. 아이에게 책을 건네주는 내 손길에 나의 의도나 욕심이, 혹은 나의 열등감이 배어 있지 않은지 몇 번이고 돌이켜 봐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건강하게 만드는 책을 고를 수 있게 안목을 키우는 일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나는 아이와 함께 빠져든 어린이책 속에서 그동안 간절히 바랐지만 만날 수 없었던 부모와 선생님들, 손을 마주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친구들, 그리고 상처받고 슬퍼하던 나를 만났다. 그리고 여기서 받은 위로와 사랑으로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내 안에 쌓인 힘은, 아이들을 제대로 바라보고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게끔 나를 이끌어 주었다.

3월이면 중학생이 되는 큰 아들이 며칠 전 내게 한 말이다. “엄마, 나는 엄마 아들이어서 너무나 좋아요.” 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