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제16대 당진향우회장으로 취임한 최형일((주)파인텔레콤 대표이사) 회장. 전자 관련업종이 각광받기도 전에 이 업종이 미래를 주도할 것을 내다보고 전자업종에 투신해 지금에 이르렀다.

당진상고(현 당진정보고)를 졸업 후 대학 진학과 함께 고향을 떠난 최 회장이지만 사회에서 자리잡고 일가를 이룬 시점부터 적극적으로 당진향우들과 교류하고 고향과 늘 함께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재경당진군민회(당진향우회 전신) 활동에 나선지도 어느새 수십여 년이 되었고 향우회 요직을 두루 거친 후 비로소 지난해 회장직을 수락했다.

명저 「정상에서 만납시다」 삶의 기준 삼아와

그의 좌우명은 ‘쉽게 포기하지 말자’라고 한다. 농촌에서 나고 자라 흔히 일류대로 분류되는 대학을 나오지도 못한 그는 대기업인 현대전자에 입사했지만 남들보다 더 힘든 직장생활을 해야 했다고 한다.

다른 동료들은 일류대 출신과 같은 지역의 선후배들의 관심과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지 못했던 것. 첫 사회생활 입문은 시기는 그 후 그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해주었다. 쉽게 포기하지 말자는 그의 좌우명을 갖게 된 시기였다. 이 때 읽게된 지그 지글러의 「정상에서 만납시다」라는 책은 그에게 감동을 주었고 정상을 향한 집념을 갖게 해주었단다.

“당시에는 해외에 관련된 사업이 대부분이었으니 영어와 일본어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정상에서 만나자는 일념 하나로 남들이 기피하는 해외출장을 자청해서 다녀왔고 어려운 협상과 영업활동도 저는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전공은 전자공학이다. 인하대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유망기업인 대우전자에 입사해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퇴직 전에는 기획실장이라는 중책을 맡기도 했다. 그리곤 故 정주영 회장의 야심찬 계획이었던 현대전자의 정보통신 사업부장으로 스카웃된다.

당시에도 드문 전자공학과 전공인데다 실무경험이 더해진 그는 각종 사업을 진두지휘하면서 현대전자를 대기업의 위치에 올려놓은 후 1990년 신호그룹의 계열사인 신호전자(주)를 창립해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신호전자는 당초 도산 직전의 중소전자업체였지만 신호전자로 출범한 지 2년여만에 흑자로 전환해 당시 업계의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학창시절부터 재능 보인 전자공학 전문가

그는 “환갑을 훌쩍 넘긴 지금 돌아보면 나의 삶은 한마디로 도전과 노력이라고 정의하고 싶다”고 말한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중학교 때 광석라디오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일이 생각나네요. 라디오의 제작 원리를 아직 고등과정에 들어서지도 못한 중학생이 이해하고 실제로 제작까지 한 것은 대단한 일이었지요. 제가 만들어보려고 마음먹고 회로기판에 납땜하다가 부모님께 크게 혼났던 기억도 나네요.(웃음) 그래도 제가 만든 라디오에서 KBS, MBC 라디오방송이 흘러나오는 것을 들이니 얼마나 뿌듯하던지요.”

그의 부모님은 그가 평범하게 교사가 되어 고향에 있기를 원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전자공학은 장차 국가기간산업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부모님을 설득해 인하대학교 공대를 선택했다.

그의 뛰어난 점은 단순한 기술인력에 머무르지 않고 기술을 바탕으로 직접 영업활동에까지 뛰어든 것이었다. 그는 “상품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연구소 개발실장이 해외 바이어를 만나 유창한 언어로 직접 소통하면서 영업을 하니 성공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수출을 할 때 늘 부딪치는 것은 가격싸움입니다. 회사매출의 20-30%를 좌우하는 미국의 한 빅바이어와 가격을 상담하던 중에 아주 첨예한 대립이었는데 벌어졌죠. 이 바이어는 분명히 우리 제품을 사야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한국이라는 약소국에 대한 무시로 가격을 무조건 깎으려고 했어요. 저는 나름 대응했으나 상담이 깨졌습니다. 그 길로 저는 귀국한다고 공항으로 가버렸어요. 그런데 갑자기 공항에서 전화가 온 것입니다. 내 요구대로 승락한 것입니다. 저는 개선장군이었고 그야말로 목숨을 건 협상에 성공해 회사의 큰 화제가 됐습니다.”

장학금 지급규모 2배확대 고심

“당진이 지금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당진의 모습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죠. 과거의 당진은 서울로 가기도, 오기도 어려웠던 소외된 지역이었습니다. 그때는 당진의 똑똑한 젊은 인재들이 서울로 올라와 청운의 꿈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기업을 비롯해 대학도 생기고 인구도 늘고 있어요. 이런 때에 당진향우회장을 맡은 제가 어떠한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는 지금은 ‘당진’이라는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세일즈’의 역할부터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50여년간 선배 회장님들과 회원들이 이뤄놓은 성과를 더욱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당진향우회의 장학금을 받은 어느 학생이 성장해 보낸 편지를 받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학생은 공부도 하기 싫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문제를 자주 일으켰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장학금을 받은 후 책임감과 자신을 알아주는 향우회의 배려를 알게 돼 그 후에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생겼고 공부에 취미를 붙이고 모범생이 되었대요. 가슴이 뿌듯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저 역시 향우회의 존재의미와 목적에 대해 다시 되새겼습니다.”

이제 창립한지 반세기 가까이 되어온 당진향우회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회원이 8000여 명에 이른다. 어당진향우회가 지난 몇 년간 주력해온 사업은 장학회 사업과 회원확충사업, 그리고 회원간의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산악회 활동이었다.

장학회는 이미 궤도에 올라 매년 20명의 회원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최형일 회장은 이 장학금 지급규모를 현재보다 2배 늘리는 방안을 고민중이다. 장학회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는 그이기에 조금 더 큰 도움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장학회 뿐만 아니라 산악회 활동도 내실있게 추진하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중이란다. 물론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는 ‘당진’의 브랜드도 알리고 수익도 내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당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서울의 자치단체와 직접 연계해 직거래장터를 여는 것이다. 이미 성사단계인 이 계획에 대해 그는 “당진농산물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학력 및 경력

- 고산초-당진중-당진상업고 졸업 - 인하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 졸업

- 대우전자주식회사(1971-1982) - 현대전자(Hynix)주식회사(1983-1990)

- 신호그룹 전자부문 대표이사·사장(1991-1996) - 파인텔레콤(주) 대표이사·사장(1997~현재)

김기연 시민기자 sainttail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