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순(60)씨는 당진시 사기소동에 살고 있다.
날씨가 화창한 봄날 나무가 물을 빨아들여 녹색이 짙어지는 3월, 다시 김유순 씨를 만났다.그를 처음 만났던 것은 3년 전의 일이다. 김 씨가 아들(고 이석주 사진작가)의 병간호 차 서울에서 내려왔을 때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들 생각에 살아가는 김유순 씨.
김 씨는 햇빛을 가릴 수 있는 차양이 달린 모자에 마스크 그리고 작업복에 장화까지 신고 비닐하우스에서 물을 주다가 반갑게 맞는다.
아는 사람이 몇 없어 늘 혼자라며 아들의 사진 전시회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아들의 전시회는 본지에 보도(당진시대 제895호)된 바 있다. 김유순 씨는 아직도 아들이 살아생전에 못다 한 일들을 해주고 싶어 했다.
전시회는 김유순 씨가 오래도록 생각해오던 것이다. 그러나 전시회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하지 않아 쉽게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전시회를 해서라도 사람들에게 잊혀 가는 아들을 기억하게 하려는 어미의 마음이다. 한편 어머니 김유순 씨가 아들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아들과 똑같은 병고에 시달려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들은 3년 전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당진에 머물며 맑은 공기와 산속에서 요양해 왔다. 아들은 병원에서 선고한 날보다 오랜 시간을 지내고 하늘나라로 갔다. 어머니 김 씨도 그런 아들과 똑같은 암에 걸려 아들과 고통을 함께 하고 있다.
김유순 씨는 “아들과 같은 병으로 당황하지 않고 현실로 천천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아들이 살아 있을 때에 준비해 준 것 같다”고 말했다.
두서없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아들에 대한 사랑이 아직도 식지 않았음이 전해진다.
“아들이 살다 갔다는 흔적을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욕심이 너무 많은 것인지 이제는 이따금씩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생겨요.”
그에게 있어 3월은 가슴 아픈 달이다.
“아들이 살아 있을 때 3월에 가장 고통이 심했어요. 그래서 3주기를 맞아 무엇을 어떻게 해야 아들에게 좋을 것인지 선택이 쉽지 않아요. 가진 것이 없고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어 안타까워요.”
가까운 밭에서 일하던 구룡리 전 이장 최광범 씨가 지나다가 옆에 와 앉았다.
“외벽에 전시된 사진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좋지요, 보기가 좋지 않은가요?” 라며 되묻는다. 최 씨는 “아드님과 함께 살다가 아드님을 먼저 보내고 아쉬운 것이 많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대견스럽죠. 죽을 때까지 아들 걱정하다 죽는 것 같아요, 부모 마음이….”라며 말끝을 흐린다.
먼저 구룡리에서 살았을 때 집을 나가야 할 형편에 있을 시기에 현재 집에서 살도록 도움의 손길을 보냈던 최광범 전 이장이다.
몸은 좀 어떠냐는 질문에 김유순 씨는 “병원에서는 아직 괜찮다고 하는데 오른쪽 팔이 저리고 아프고 손가락과 팔이 말을 잘 안 듣는다”고 말했다.
“1차 수술은 2010년 11월에 받았고, 2차 수술은 2012년 9월에 받았어요. 그때 2차 전이가 있어 13번 등뼈를 잘라냈죠. 그 후로 아직 전이가 안 된 상태예요. 식이 요법과 운동 그리고 뿌리 약초를 30여 가지 직접 심어서 하루 세 번 복용을 하고 있어요. 지난해는 40여 종을 심었는데 올해는 모르겠어요.”
그는 또 지난날을 돌이키며 “서울에서는 정신없이 살았다”며 “당진에온 지난 1년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곤함 없이 지냈다”고 말했다.
4월 28일이면 아들 3주기가 된다. 김씨는 아들이 잠들어 있는 곳을 찾아갈 생각이다. 김 씨는 아들이 찍은 풍경 사진 액자를 아들을 보듯이 만졌다.
김유순 씨 연락처 : 010-8010-3324
김석준 시민기자 k3629009@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