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속박과의 힘겨운 싸움, 그리고 상처받은 시혼

어둠속의 고독한 눈동자, 좌절된 저항

37년말~

어떤 각도에서 보면 윤곤강은 끝까지 자신이 문학입장을 지킬 듯 생각된 시인이다. 적어도

37년초까지는 그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 역시 카프 해산후 두어해를 버틴

다음 방향전환을 했다.

그 분기점을 이룬 작품이 37년 7월 3일 조선일보에 발표된 좥암야좦이다. 그에 이은 작품

집 좥조광좦(37년 10월)에 실려 있는 좥고독좦, 좥병좦, 좥병실좦 등에서 윤곤강의 180도 방

향전환은 명백한 사실로 굳어졌다.

우선 좥암야좦는 “어둠이 망난이처럼 / 왼누리를 집에 삼켰도다”로 시작한다. 이 작품의

무대는 밤이며 거기서 화자가 보고 듣는 것은 헛것과 도깨비며 환영이다. 또한 좥고독좦은

다음과 같다.

썩어 지친 지붕

석유등잔이 매달린 낡은 방안

등잔의 나사를 틀면

치-하고 우짓는 고독

턱에다 주목을 고이고

계집애처럼 울고 싶은 밤

어둠은 바닷속처럼 깊고

그 속에 반짝이는 눈동자가 두 개가 있다.

이 작품의 화자는 “계집애처럼 울고 싶은 밤”을 지킨다.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을씨년스

런 집안의 석유등잔이다. 거기서 그는 고독과 그 집약적 상징인 ‘눈동자’를 의식할 수 있

을 뿐이다.

그동안 그의 시세계를 특징짓는 것은 집단의 감정이며, 역사의식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와 반대로 사적인 세계와 내향적 감정을 지닐 뿐이다. 이와 함께 또 하나 지적될 수 있는

것이 이들 작품이 지닌 암울한 색조이다.

좥대지좦의 시편들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있기는 했지만 거기에는 그 부정적 요소를 비판,

극복하려는 의욕내지 의지가 엿보였다. 그러나 위의 작품에서부터 그런 의욕이 나타나지 않

고 그 대신 거기에는 침울하고 패배적이라고 생각되는 색조가 짙게 나타난다. 이런 방향전

환 후 윤곤강의 작품활동은 기름에 불을 붙인 것처럼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좥대지좦를 낸 한해 다음에 그는 60여편의 작품을 수록한 제2시집 좥만가좦를 냈다. 그리

고 그 다음해에 좥동물시집좦, 40년에 제4시집 좥빙화좦를 펴냈다. 그 눈길은 한결같이 탐미

적인 동시에 그 세계는 암울한 색조로 가득 차 있다. 좥빙화좦에서 주목되는 것은 거기에

모더니즘계로 생각되는 기법이 수용된 점이다.

그는 좥만가좦의 세계가 보들레르적인 것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여기서 ‘보들레르적’이

란 시를 위해 강하게 내면 탐구를 한 경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거기에는 또한 효용성이나

대사회적 기능 대신 예술성 추구에 역점을 두는 탐미적 성격도 내포될 수 있다. 좥만가좦의

단계에 접어들면서 그는 시에 대한 생각을 180도 바꾼 듯 보인다. 그 결과 지향된 것이

‘생의 원형’으로 생각된 암울한 색조의 세계였다. 그것을 내향적 눈길로 노래하고자 한

것이 좥만가좦의 시가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는 시를 창조라고 규정하면서 그 달성을 위해 “시는 표현이요, 표현이 없는

곳에서 시의 창조를 찾으려는 것은 허망에 불과하다”고 적은 바 있다. 그런데 정작 이런

생각을 한 다음 모더니즘의 한 단면에 주목한 것이었다.

특히 정지용이나 신석정, 김광균의 시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언어의 감각적 사용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좥빙화좦의 단계에서 그것을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그

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참된 시를 위해 노력을 기울인 윤곤강의 발자취는 인정되어야 할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