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농경사회 시절 첫눈이 내리는 소설(小雪) 즈음에 옛 여인네들은 너나없이 메주를 쒔다. 메주 맛에 따라 그 해 장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길일을 택하고 금기사항을 엄격히 지키는 등 지극 정성을 기울였다.
한 해 동안 쓸 메주를 쑤는 일은 김장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월동준비였다. 어머니가 콩을 삶으면 아이들은 발로 밟고, 아버지는 볏짚으로 묶어 매달았다. 겨우내 메주가 꽁꽁 얼고 나면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 발효시켜 간장도 만들고 된장도 만드는 풍경은 이제 일반 가정에서 보기 어려워 졌다.
손이 많이가는 장담기를 공장이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언제부터인지 장 맛이 획일적으로 변했다. 된장 제품들이 각 식품회사별로 나오기 시작했고 식당을 비롯해 가정에서도 간편함과 대중화된 입맛에 따라 장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됐다.
메주 익어가는 최 씨 부부의 집
당진 용연동에는 마트나 편의점에 즐비한 된장이 아닌 전통방식 그대로 장을 담아내는 집이 있다. 당진에 정착한지 15년째 되는 귀농인 최창선(63), 오상화(60)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빚어진 메주들이 줄에 묶여 건조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이 진풍경이다. 차디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녹고 얼기를 반복하고 있다.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25년간 의류 도매업에 종사해 오던 최 씨 부부는 갑작스럽게 다가온 IMF로 인해 점포를 정리하고 귀농을 결심했다. 최 씨 부부는 당진에 정착해 온돌집을 짓고 콩도 심고, 밭도 일구며 당진시농업기술센터에서 각종 작물을 기르는 법을 배웠다. 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생활에 푹 빠져 알콩달콩 지내왔다.
이런 최 씨 부부가 메주를 쒀 전통식 된장과 간장을 만드는 일에 매달리게 된 배경은 아주 사소한 이유에서 비롯됐다. 어느날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위해 넣은 콩대에 남아 있던 콩이 달궈지면서 번뜩 최 씨의 이마를 때렸다.
“벌겋게 달아오른 이마를 만지면서 ‘이 콩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죠. 귀농해 살면서 기른 콩으로 메주를 한 번 쒀 보자는 생각으로 이어지더군요. 어린 시절 부모님이 메주를 쑤던 모습을 많이 봐왔지만 직접하려니 쉽게 되지 않았죠.”
메주라는 아이디어가 머리 속에 꽂히자 남편 최창선 씨는 지리산에서 유명한 재래식 된장을 담아내는 공장을 수소문한 끝에 찾아냈다. 최 씨는 사정사정 해서 메주 만드는 과정과 숙성과정을 배우고 된장과 간장이 되기까지의 노하우를 그대로 전수받았다.
기쁜 마음을 안고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와 아내와 함께 메주를 만들어 된장과 간장을 담아 봤지만 배운 것처럼 만족스런 맛을 내지는 못했다. 그렇게 2~3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수도 없는 실패와 도전을 거쳤고 이를 기반으로 지금의 깊은 맛을 만들어 냈다.
“정성을 들여 잘 발효시킨 메주에서 비로소 장맛이 결정 됩니다. 발효과정에서 자칫 습기가 남아 있을 경우 된장 맛을 좌우하는 곰팡이들이 제대로 피어나질 못하죠.”
장독대 부족할 정도로 주문량 늘어나
이들이 정성으로 만든 ‘당진삿골된장’의 된장과 간장은 3년 이상 간수를 뺀 천일염을 사용한다. 간수를 뺀 천일염은 특유의 쓴 맛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완성된 된장도 3년 이상 묵힌 뒤 판매하고 있어 숙성된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최근에는 황토흙 5cm, 편백나무 5cm의 벽으로 이뤄진 온돌방을 짓고 겨우내 얼려둔 메주를 발효시키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발효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한 달 가량 온돌방에서 일정 온도에 맞춰 메주를 발효시키죠. 최상의 질을 갖춘 메주를 만들어 내기 위해 겉과 속을 바짝 말립니다. 습기가 완전히 제거된 메주는 단단하고 겉과 속에 곰팡이가 골고루 자리 잡게 됩니다. 이런 메주만을 이용해 된장과 간장을 만들고 있죠.”
최 씨 부부는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메주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아직 홍보가 되지 않아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전통 방식으로 만든 메주와 된장·간장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도 정작 구매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려움을 겪던 때, 홍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최 씨 부부는 판매되지 않는 된장과 간장을 주변의 지인에게 나눠줬다. 점차 당진삿골된장의 맛과 가치를 알게된 사람들의 주문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진삿골된장은 그동안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판매량과 생산량을 늘려가는 추세다. “우리 부부가 만든 된장과 간장을 찾는 이들이 많이 늘어나니 여간 기쁜 일이 아니에요. 맛있게 드시고 다시 찾아주시는 분들을 보며 보람을 느끼죠.”
요즘 된장·간장을 만들고 보관 및 관리하는 재미에 푹 빠진 이들에게도 고민거리가 생겨났다. 늘어나는 판매량과 생산량에 맞춰 장을 담그다 보니 3년 동안 된장과 간장들을 보관할 수 있는 장독대가 부족한 상황에 이르렀다. 최 씨 부부의 된장·간장 인기가 높아진 건 즐거운 일이지만 장독대 하나에 100만 원을 호가하다보니 쉽사리 개수를 늘릴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된장과 간장을 원하는 많은이들 중에서 한정된 인원에게만 판매할 수도 없다.
“점차 늘어나는 주문량에 맞춰 더 많은 분들에게 당진삿골된장의 장맛을 보여드리고 싶습네요.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연락처 : 355-5496, 010-3164-5496
■주소 : 당진시 발산1길 30-120
■가격 : 된장(1kg 1만5천 원), 간장(1.8ℓ 1만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