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프랑스혁명은 ‘자유·평등·박애’라는 기치 하에 민주주의를 획득한 세계사적인 시민혁명이다. 프랑스혁명 이후 사회구조는 귀족사회에서 시민사회로 변화하였다. 그럼 프랑스혁명은 예술 특히 음악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프랑스혁명은 귀족사회에서 시민사회로 변화를 가져온 거대한 정치적 사건만큼이나 음악가의 경제적 구조를 변화시킨 예술사의 큰 사건이었다.
예술가의 경제적 구조는 사회구조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음악가의 경제활동을 좌우했던 패트런(patron, 경제적 의미의 후원자)이 프랑스혁명 후 귀족에서 일반시민으로 변화했고, 이에 따라 음악가의 경제활동 방식도 변화했다. 그 변화는 프랑스혁명 전후에 살았던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에서 잘 나타난다.
하이든(1732~1809)은 헝가리의 대표적 귀족집안이자 예술에 대한 열렬한 후원자였던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악장이 되어 거의 30년을 근무했다. 이로 인해 하이든은 평생을 경제적 고민 없이 음악활동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귀족사회 시대의 삶을 지낸 대표적인 예다.
시기적으로 하이든의 후배인 모차르트(1756~1791)는 경제적 후원자가 귀족과 교회라는 점에서 평생을 갈등하고 살았던 인물이다. 모차르트는 예술의 자유를 갈망했고, 경제적 후원자였던 귀족과 교회로부터 자유롭고자 했다. 모차르트가 귀족사회에 대해 가진 인식은 그가 프리메이슨의 일원이었고,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등의 내용에서 나타난다.
베토벤(1770~1827)은 사회적으로 자신이 귀족과 동등하다고 생각했고, 정신적으로는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청년시절의 나폴레옹의 숭배자였고, 프랑스혁명의 이념인 ‘자유·평등·박애’를 받아들인 인물이었다. 그는 귀족으로부터 독립적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최초의 음악가였다.
베토벤의 이러한 삶은 프랑스혁명의 결과이기도 하다. 혁명 이후 귀족들은 더 이상 사회의 주류가 아니었고, 이에 따라 이들은 음악가의 후원자가 되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음악가들은 본격적으로 새로운 후원자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작곡가들은 귀족이 아닌 일반 청중의 취향에 의존해 작품을 쓰게 됐다. 이제 일반 청중들이 후원자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대두와 시민사회의 성립 등 사회적·정치적·경제적 변화로 말미암아 예술가의 경제적 구조가 변화했고, 여기에는 프랑스혁명이 있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