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포지역 천주교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성지 중 하나인 솔뫼성지는 소나무가 뫼(山)를 이루고 있다고 해 ‘솔뫼’라고 이름 붙여졌다.
1946년 김대건 신부의 순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순교기념비가 세워지며 솔뫼성지가 본격적으로 조성 됐다. 이어 김대건 신부가 시성식을 통해 성인의 반열에 오르며 시성비가 세워지고 생가복원, 솔뫼 아레나 광장 조성 등이 이뤄져 지금의 솔뫼성지 모습을 띄게 됐다. 현재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기념성당 및 기념관, 십가자의 길, 소나무 숲 등으로 구성돼 있다.
신앙의 못자리로 불리는 솔뫼성지는 한국최초의 신부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다. 그를 포함한 김 씨 집안의 4대(김진후, 김종한, 김제준)가 32년에 걸쳐 신앙을 위해 순교했다. 한편 김대건 신부는 솔뫼성지에서 1821년 8월에 태어나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 사제서품을 받았다. 이후 1845년 조선으로 입국해 선교활동을 펼치던 중 1846년 6월 순위도 앞바다에서 체포돼 26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솔뫼성지에는 1년에 약 3000여명의 신자들이 방문하고 있다. 한 달에 2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솔뫼성지에 방문하고 있는 셈이다. 연 3000명의 방문인구는 정식통보를 한 방문객들만 대략적으로 집계된 수다. 비공식적인 방문객을 포함한다면 엄청난 인구가 한 해에 솔뫼성지를 찾고 있다. 또한 김대건 신부 생가터는 현재 충청남도 문화재 제146호로 지정돼 있을 만큼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유적지기도 하다.
솔뫼성지 이용호 바오로 전담신부는 “솔뫼성지는 종교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문화, 역사, 경제적인 가치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천주교 신앙의 전파는 1785년으로 기록돼 있다. 신앙의 전파기간이 짧은 것에 비해 내포지역에서 수많은 순교자가 나온 것에 대해 학자들은 당나라와의 교역으로 이전부터 신앙이 전파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천주교는 주로 부당함을 받고 있던 평민들이 주 구성층이었다. 이전부터 당진은 당나라와의 교역을 통해 많은 신문물을 접할 기회가 많아 천주교의 유입이 쉽게 이뤄졌다. 또한 당시 많은 박해들이 진행돼 천주교인들은 육로를 이용한 이동은 자제했고 많은 이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를 터전으로 잡아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해로를 이용하기 좋은 위치와 밀물과 썰물이 밀려와 사람이 살기 어렵던 당진지역의 지형은 천주교와 교인들이 뿌리를 내리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교우들은 집성촌을 이뤄 터전을 잡고 신앙을 퍼트리고자 노력했지만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로 순교하거나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박해로 뿌려진 피들은 천주교 문화의 거름이 됐다.
“순교는 어원적 의미로 증거, 증언이라는 뜻이죠. 수많은 순교자들은 자신의 믿음과 사랑을 증언하고자 목숨을 바쳤습니다. 순교는 숭고하고 위대한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이용호 바오로 전담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