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미라 씨는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이자 며느리다. 철강회사의 작은 사무실에서 사무일을 보던 경리기도 했다. 하지만 한 때는 웅변대회라면 빠짐없이 나가 목청껏 웅변 실력을 뽐내기도 했고 소풍 때면 앞에 나가 사회를 보고, 노래하던 장미라 학생이었다. 결혼 후 아이를 낳은 뒤로는 십 수 년 간 현모양처로만 살아왔다.
그렇게 반복되던 일상 속에 그는 노래를 만나 제2의 인생을 맞이하는 중이다. 문화센터에서 노래 강의를 듣던 장미라(47) 씨에게 박승란 강사(현 한밭대 평생교육과 교수)가 “노래강사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하지만 쉽사리 결정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과연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부터 앞섰다. 거절도 했지만 박 교수는 또 다시 제안했다.
아들이 준 등록금에 눈물 펑펑
그때 딸이 “엄마에게 재능이 있으니 권유한 것”이라며 “엄마가 행복하다면 한 번 배워보는게 좋을 것 같다”고 말 해 준 것이 그에게 용기를 불어 넣었다. 친구들도 “(노래강사 가) 너에게 딱”이라며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면서 힘을 실어줬다.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에 떠밀려(?) 한밭대학교 평생교육원 노래강사지도과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수업은 물론 필기·실기 시험까지 산 넘어 산이었다. 뒤늦게 공부하려니 막막했다. 1학기를 힘들게 끝마치고 2학기 강의를 수강하기에 앞서 그만 둘까라는 고민을 했다.
그 때 둘째 아들이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그에게 등록금으로 쓰라며 건냈다. 그 날 그 돈을 받고 장미라 씨는 펑펑 울었다.
그는 “주저앉고 싶어도 가족들이 있기에 주저 앉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힘든 것은 둘째였을 뿐 자신의 꿈을 찾아간다는 것에 대한 행복함이 가득했다.
말 못한 어르신이 선물한 땅콩
지난해 8월 노래강사 지도사 과정을 모두 마쳤지만, 막상 졸업하니 강사로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당진시자원봉사센터에 “봉사하고 싶다”며 직접 연락을 취했다. 이 후 광명실버하우스와 당진시립노인요양원에서 노래로 재능 기부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어머니들이 저한테 그래요. 온 몸이 아프다가도 제가 와서 노래를 부르면 하나도 안 아프대요. 이 얘기를 듣고 눈물이 왈칵 났어요. 그 때 ‘이 끈을 놓으면 안 되겠구나’라고 다짐했습니다.”
말 못하는 어르신도 장 씨의 노래라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춤을 추기도 했다. 한 번은 장 씨가 봉사를 끝마치고 가려는데 손짓, 몸짓 해가며 잠시만 기다리라며 집에서 땅콩 한 봉지를 가져온 어르신이 있었다. 이 밖에도 식혜, 귀하다는 고로쇠물, 떡 등을 매번 받을 만큼 장 씨는 어르신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그는 “노래 봉사가 끝나면 어머님들이 ‘복 받을 것’이라며 손을 꼭 잡아줬다”면서 “그래서 복이 찾아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노래 강사 지도자로 활동 시작
이후 당진학 노래교실에서 당진평생학습마을로 선정된 14개 마을을 대상으로 노래강사를 파견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우강면 송산3리와 순성면 백석리 강사로 활동 활동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봉사에 열심이다.
강의 준비하랴 봉사하랴, 거기에 주부로서 역할을 다해야 했기에 하루에 겨우 3시간 남짓 잠을 자가며 하빠듯한 날들을 보내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임부연)이 “방개딱지(물방개) 같다”며 그에게 별명을 지어줬다고.
그래도 그는 “바쁜 일정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 엔도르핀이 저절로 생겼다”며 “몸이 힘들어도 마이크만 잡으면 싹 잊어버렸다”고 말할 정도로 노래강사 활동과 봉사에 푹 빠져있다.
“말은 뿌리고 노래는 열매라고들 하잖아요. 노래는 슬플 땐 위로해주고 기쁠 땐 함께 기뻐해주는 존재에요. 저에게 제2의 인생을 선물해 준 노래를 앞으로는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사용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