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를 임신한 건, 당진을 떠나 대전에 새로운 둥지를 튼 지 넉 달만의 일이었다. 임신사실을 알고 처음 한 일은 여느 산모들처럼 산부인과에 가는 것이었다. 임신을 하면 당연히 산부인과에 가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에 대해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황홀한 출산>이라는 책을 알게 됐다. 배가 불러올수록 출산의 고통이 점점 공포로 다가오던 차에 출산이라는 단어 앞에 붙은 ‘황홀한’이란 수식어는 그야말로 허무맹랑한 소리 같았다. 그땐 몰랐다. 황당무계한 제목의 이 책이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리라는 걸.

<황홀한 출산>은 자연출산에 대해 다룬 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왕절개를 하지 않으면 다 자연분만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자연분만과 자연출산은 좀 다른 개념이다. 가장 큰 차이는 출산의 주체다.

분만은 영어로 delivery라 한다. 산모의 몸에서 아이를 나눈다는 의미다. 주체는 의사로, 안전하게 산모의 몸에서 아이를 빼낸다는 의미가 강하다.

반면 출산은 영어로 birth라고 한다. 산모와 남편, 그리고 아기가 주체가 되며 아기가 세상에 나온다는 의미에 초점을 둔다. 말장난 같아 보이지만 주체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우선 자연출산은 산모에게 유익하다. 임산부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3대 굴욕이 있다. 회음부 절개, 음모 제거, 관장이 그것이다. 의료진이 주체가 되는 자연‘분만’을 할 경우, (의사 입장에서)보다 효율적인 시술을 위해 장애가 되는 것들을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다.

오히려 산모에게는 이러한 조치가 출산 전후로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이 된다. 자연출산으로 윤이를 낳은 나는 3대 굴욕 모두를 피해갔다. 산후 1개월 검진을 받으러 산부인과를 찾았을 때, 의사는 진찰하는 동안 “회음부를 절개하지 않았다고요?”라는 말을 무려 다섯 번이나 했다.

자연출산은 아기에게도 유익하다. 무엇보다 아기는 평화로운 출산을 경험하게 된다. 르봐이예 박사는 분만실의 소음, 밝은 조명, 성급한 의료행위 등이 아기에게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자연출산으로 태어나는 아기는 대부분 태어나자마자 엄마 품에 안기게 된다(캥거루 케어). 탯줄을 자르고 몸을 닦고 몸무게를 재는 등의 행위는 2순위다. 윤이는 태어난 순간부터 약 2시간 동안 엄마와 아빠 배 위에서 편안히 잠을 잤다.

자연출산은 무엇보다 예비아빠에게 유익하다. 내가 자연출산을 선택했고,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연출산은 남편을 출산의 동반자로 본다. 남편은 진통에서 출산까지 전 과정을 산모와 함께 한다. 임신 초기에는 육아서에 관심이 없던 남편도 자연출산을 결심한 뒤로는 책임감이 생겨 출산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이가 태어나던 날, 5시간의 진통을 겪는 동안 남편은 호흡을 함께 하고 진통을 완화시켜준다는 마사지도 해줬다. 무엇보다 단 한 번도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윤이를 ‘함께’ 낳았다는 생각에 ‘전우애’같은 걸 느꼈다.

자연출산을 결심했을 때, “미쳤냐”는 말부터 “돈이 없어서 그러냐”는 소리(실제로는 비용이 더 든다)까지 들었다. 반응들이 이렇다보니 가족 이외의 사람들에게 자연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고개는 끄덕이면서도 ‘유별나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게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쩍 말을 꺼내 보았다가 반응이 격하면 입을 다물곤 했다.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나와 다른 생각들은 모두 ‘악’이라고 치부하는 극단적인 사람들. 마치 세상에는 검정색과 흰색만 있다고 믿는 것 같은 사람들에게 여기 빨강도, 파랑도 있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윤이가 살아갈 시대는 의사가 쓴 육아서에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다음 장에 ‘자연출산’이 수록되는, 그런 사회였으면 하는 건 단지 엄마의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