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9월 16일 심훈은 세상을 떠났다.

2014년 9월 16일 심훈기념관이 심훈이 떠난 그날, 심훈의 집 ‘필경사’ 앞에 세워졌다. 심훈이 세상을 떠난 지 78년만이다.

심훈기념관을 세우기 위해 당진시는 <심훈기념관 관리·운영에 관한 조례>를 만들고, 각종 건축공사와 전시물을 위한 일들과 관리 운영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한편 유족이 대표하는 재미(在美) 심훈기념관은 이전의 약속대로 당진시와 ‘심훈선생 유품보관과 사용에 관한 협약’을 맺고, 그동안 모으고 정리해온 심훈 유품과 친필, 영화각본, 일제총독부가 새빨간 연필로 검열한 시집 <그날의 오면>, 사진, 심훈의 책상 등 국보급 유산 4000여 점을 전시용으로 내놓았다. 우리 민족의 방대한 문화자산이다.

집주인 심훈이 세상을 떠난 뒤 필경사는 모진 세월에 시달렸다. 그때마다 지붕이 헐면 부곡리 주민들이 지붕을 다시 이었고, 집이 무너지면 주민들이 대들보를 일으켜 세웠다. 빈 집 마당에 잡풀이 우거지면 풀을 쥐어뜯어 정돈했다. 그리고는 드디어 심훈기념관이 서게 됐다. 결국 심훈기념관의 주인은 고향을 지켜온 부곡리 사람들과 당진시민이다. 나는 일찍이 심훈기념관의 주인은 부곡리 주민과 당진시민이라고 선언했다. 심훈기념관은 ‘우리’의 기념관이 됐다.

심훈기념관은 어느 기념관도 갖지 못한 풍부한 문화자료(전시자료)를 가지고 있다. 해마다 철을 바꾸면서 새롭게 전시할 수 있다. 우리의 심훈기념관은 ‘살아 숨 쉬는 기념관’이다.

살아 숨 쉬는 우리의 기념관을 위하는 일이라면 그 길에 나도, 우리 가족도, 발 벗고 참여할 것이다. 심훈기념관을 위해서 몸과 마음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시는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특히 당진시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