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진초등학교 5학년 당시(1976년도), 주말 TV 방송 중에서 제일 싫어했던 프로가 스포츠였다. 그것도 야구 중계는 3시간 이상을 하였기에 너무 지루해 했었다.

그런데 학년 초 새로 부임하신 이장세 선생님(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십니다)을 통해 야구를 본의 아니게 시작하게 되었고 6학년 때는 충남에서 우승을 하여 충남 대표로 서울 장충동 야구장을 밟아 보기도 하였다. 우리 선수들은 그 때 서울을 처음 갔다. 정말 대단한 촌놈들이었다.

그 야구의 인연으로 나는 나이 50세에 당진야구동호회에서 지금도 공을 던지고 있고 충청연회 목회자 야구팀을 만들어서 함께하고 있다. 또한 금년에는 젊은 선수들과 함께 동료가 되어서 당진시 야구대표로 도민체전 등에 출전하여 동메달까지 땄다. 야구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중심교리는 십자가이다. 예수님께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고 하셨듯이 주님의 길을 따르는 것이 십자가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 주님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바로 이 십자가는 희생이요, 죽음이다.

십자가는 내가 보이고 드러나면 안 된다. 십자가는 나 자신이 완전히 없어져야 된다. 십자가는 내가 완전히 죽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이고 기독교이다.

야구에는 기독교의 교리가 들어가 있다. 그것은 희생(a sacrifice)이라는 것이다. 바로 십자가다. 도움주다(assist)가 아니라 온전한 희생을 말한다.

어떤 종교에서도 희생이란 말은 없는데 기독교만이 희생을 말하고, 어떤 스포츠에서도 희생을 말하지 않는데 야구에서만 말한다. 도움주다(assist)라고 하지 않고 희생번트(a sacrifice bunt), 희생타(a sacrifice hit)라고 말한다. 야구에서 타자는 살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죽으려고 나오는 것이다.

어디에서 이런 장면이 나오겠는가?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갚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하늘보좌 다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다.

세계 1차, 2차 전쟁을 통해 당시 미국사회의 젊은이들을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고 부른다. 이들에게는 허무주의, 상실주의가 만연했다.

그러한 시기에 모든 종목의 스포츠 경기는 중단이 되었는데 메이저리그만은 중단 없이 경기를 계속 이어갔다. 그 이유는 바로 야구에만 있는 희생(a sacrifice)이란 용어 때문이었다. 이 희생이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진정한 기독교의 신앙 즉 희생이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도와주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희생에는 만족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죽어야 야구에서 작전이 성공되고, 팀이 승리할 수 있듯이 내가 죽어야 내가 살고 모두가 살 수 있는 것이다.

야구와 같은, 예수님과 같은 진정한 희생(a sacrifice)이 있는 사회가 되어서 모두에게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모두에게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넘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