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전 승원이가 태어났다. 승원이는 밤새 자지도 않고 울기만 했다. 비슷한 또래의 옆집 아이와는 너무도 달랐다.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사람들의 말에 반응하지도 않았다. 김남숙 씨는 승원이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의사는 자폐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는 아니겠거니 하고, 치료하면 나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병원을 오가며 자란 승원이는 자랄수록 또래 아이들과 달랐다. 결국 승원이는 ‘자폐’ 판정을 받았다.

“승원이가 자폐증이라는 판정을 받고 패닉상태에 빠졌어요. 이 애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싶어 눈물만 났고 그 후에는 화도 났어요. 한동안 그렇게 방 안에서 울기만 했죠.”

주변에 장애인을 마주할 기회가 없었던 김 씨는 자기가 열심히 하면 승원이가 나을 줄 알았단다. 그래서 승원이를 병원 데리고 가랴, 치료기관에 데리고 가랴 동분서주하기 바빴다. 치료 때문에 남편과 떨어져 지내야 했고 승원이를 위해 운전면허까지 땄다. 그는 “처음엔 당황해서 아이한테만 매달렸다”며 “매일매일을 전전긍긍하며 살았다”고 말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승원이는 나아질 기미 없이 심각해지기만 했다. 수업시간에 같은 반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칠까 우려돼 김 씨가 승원이 옆에 앉아 수업을 듣기도 했다. 그때 담임교사가 김 씨에게 “승원이만이 아닌 가족도 돌보라”고 조언했고 그는 바로 남편이 있는 당진으로 내려왔다.

그 후 당진에서 치료 프로그램실을 알아보던 중 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모이는 충남장애인부모회 당진지회(이하 부모회)를 알게 됐다. 십여 년 동안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했던 그에게 부모회는 그의 삶을 바꿔준 곳이었다. 같은 어려움을 처해있는 가족들을 만나며 서로 위로하고 보듬었다. 때로는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일상의 이야기도 나눴다. 그러면서 김 씨는 사회를 마주하게 됐다.

“그 전에만 해도 아이 돌보기에 바빠서 다른 곳에 눈돌릴 새가 없었죠. 남 일이나 사회 일은 하나도 관심가지지 못했어요. 하지만 이제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다른 곳에도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렇게 차츰 다른 이들 소식에 관심이 생기며 접한 것이 당진시대였다. 그는 “내가 아는 지역의 소식들이 담겨 있으니 더욱 반갑고 친밀하다”며 “특히 장애아를 둔 가족들은 정보가 필요해 신문이 많은 도움된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에 관련된 당진시의 복지정책 혹은 단체, 소식 등에 대해 눈여겨 본다고 전했다. 또한 미담 기사를 보고 함께 공감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안내기사에서 나온 기관에서 프로그램을 수강하기도 했다. 때로는 엄마들끼리 맛집에 소개된 음식점에 찾아가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고.

그는 앞으로 당진시대가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김 씨는 “신문이 우리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장애인에 대해 편견을 해소하는 것에 기여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너무 아이한테만 본인의 역량을 쏟지 않았으면 해요. 일단 나부터 돌봐야 아이도 안정되고 가족도 건강해요. 도움 받을 수 있는 곳에서 도움도 받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속 시원히 했으면 좋겠어요. 더불어 사는 사회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