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학생 으로 연세대 석·박사 과정 입학
“고국 농축산업 발전에 도움 되고 싶어요”
아직 앳된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가득하다. 유창하진 않지만 천천히 한국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이 소녀는 4개월 전 우리에겐 조금 생소한 나라, 키르키즈스탄에서 왔다.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그는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나라(키르키즈스탄)가 잘 살 수 있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우연히 만난 한국인 '아빠'
키르키즈스탄은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등과 같이 중앙아시아 북부에 위치한 나라로 러시아 혁명 이후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국가다. 1인당 GDP가 1300여 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경제 규모도 작고 발전이 더딘 개발도상국이다.
몇 해 전 충남동물병원 정한영 원장은 우연한 기회로 키르키즈스탄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수의사로서 낙농·축산 분야와 관련해 후견인을 하고자 수도인 비슈케크에서 2주 동안 머물렀다. 유목민족인 그들에게 낙농과 축산은 무척 중요한데, 정 원장은 그곳에 체류하며 관련 기술을 전했다.
그동안 그는 스크라빈국립대학교에 다니고 있던 모놀도르바 세짐을 만나게 됐다. 올해 24살이 된 세짐은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했다. 그는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던 NGO대표 (한국과 키르기즈의 우정) 정근중 씨에게 처음 한국말을 배웠고 그를 통해 정한영 원장을 알게 된 것이다. 세짐은 정 대표를 ‘아빠’로, 정 원장은 ‘삼촌’이라고 부른다.
가정형편 어렵지만 ‘똘망’
12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세짐은 가정 형편은 어렵지만 똘망똘망했다. 정 원장은 한국에서 더 공부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정 대표와 함께 세짐의 한국 유학을 추진하게 됐고, 어렵게 세짐을 한국으로 초청할 수 있었다.
“비자를 발급받는 게 상당히 어려웠어요. 그래도 이번 일을 추진하면서 개발도상국의 외국인 학생을 도울 수 있는 계기가 생겨 무척 뿌듯하죠.”(정한영 원장)
지난 10월 입국해, 한동안 정 원장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낸 세짐은 오는 3월 연세대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다. 그는 5년 동안 우수외국인장학생으로 생명공학 석박사 통합과정을 이수하게 된다.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던 그에게 한국에서 유학할 수 있는 기회는 꿈만 같은 일이다. 더구나 장학생으로 학비도 필요 없고, 연구실에서 일하면서 매달 40만 원의 생활비를 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게 됐다.
세짐은 “기술과 환경이 훨씬 더 나은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공부를 열심히 한 뒤 키르키즈스탄으로 돌아가 좋은 교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모국의 축산·농업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는 게 그의 꿈이다.
처음 바다를 보다
세짐은 키르키즈스탄어 뿐만 아니라 러시아어와 영어, 한국어 등 4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2년 동안 키르키즈스탄에서 한국어를 배웠지만 능숙하게 구사하기란 쉽지만은 않다. 다른 언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높임말과 한국어 문법은 정말 어렵단다. 하지만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세짐의 한국어 실력은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요즘들어 세짐은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것이 점차 능숙해지고 있다.
“지금도 한국어 잘 못해요. 그래도 한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정말 어렵지만 재미있어요. 한국 사람들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정말 똑똑한 것 같아요.”(세짐)
세짐에겐 한국의 모든 환경이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다. 중앙아시아 내륙 국가에서 살아온 그는 당진에 와서 처음 바다를 봤다. 끝도 없이 넓은 바다가 그저 신기했다는 그는 지난 4개월 동안 서울·대전·천안 등을 여행하면서 새로운 한국의 풍경을 경험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지금 한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아시아 대륙 한가운데 위치한 키르키즈스탄에 비하면 춥지 않은 날씨라고 한다.
“키르키즈스탄은 한국보다 훨씬 추워요. 눈도 많이 오죠. 한국의 지금 날씨는 살기에 딱 좋은 것 같아요.”
“친구들 많이 사귀고 싶어”
평생 살아온 고국을 떠나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고 있는 세짐은 두렵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예정이다.
“공부하면서 한국인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여행도 많이 가고 싶다”며 “키르키즈스탄에 있는 가족들도 많이 보고 싶지만 지금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에 더 집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빠(정근중 대표)와 삼촌(정한영 원장)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 편집자주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들의 삶을 통해 사회를 보고 세상을 알고 싶었다. 혹자는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했지만 정작 부지런히 세상을 움직이는 건 한 명의 천재가 아닌 10만 명의 우리 이웃들이다. 별나지 않은 인생 속에 누구도 살아 보지 않은 특별함이 있고, 평범한 일상 속에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우리는 이들의 소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었다. ‘세상사는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제, 당신의 삶을 들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