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앓은 감기 때문인지 날마다 봄을 기다렸다. ‘오늘은 새싹이 나왔을까?’ ‘꽃이 피었을까?’하면서 도량을 둘러보곤 했다. 그러다가 봄을 찾으러 경상남도 양산에 자리 잡은 내원사를 다녀왔다. 그곳은 몇 년 전, 여름안거(3개월 간 참선수행)를 보냈던 곳이라 여러 가지 기억과 추억이 함께 하는 곳이다. 내원사의 모습은 새로웠다. 계곡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단장되어 있고 우물터와 공양간도 새롭게 바뀌었고 법당도 세워졌다. 새벽 3시에 도량석을 올리고 보니 포행정진 했던 도량이 여전히 친근했다.

내원사는 유서 깊은 곳이다. 송고승전(宋高僧傳)에 의하면 673년(신라 문무왕13년) 원효(617-688)대사가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있는 담운사에 계실 때 참선에 들어가 중국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장마 때문에 산이 내려앉아 당나라 산서성 태화사라는 절의 천명이나 되는 대중이 흙더미에 묻힐 순간이었다. 원효스님은 마루판 한 장을 얼른 떼어 글자를 적어 중국으로 보냈다. 태화사 법당 앞에 판자가 허공에서 맴도는 기이한 모습에 온 대중이 법당에서 뛰어나왔고 그때, 뒷산이  무너져내렸다. 소용돌이치던 판자도 내려앉았다. 살펴보니 海東元曉板救衆(해동원효판구중:해동 원효가 판을 던져 대중을 구하다)이라 쓰여 있었다. 그 이후로 천명의 대중이 원효를 찾아와 제자가 되었다.

원효가 그들이 머무를 곳을 찾아 내원사 부근에 이르자 원적산 산신령이 마중 나와 지금의 산신각 자리에 이르러 사라져버렸다. 이에 원효는 이 일대에 내원사를 비롯한 89암자를 지어 천명의 제자를 머물게 하였다. 그곳에서 천명의 대중이 모두 성인이 되었다고 한다. 원래 원적산 이었는데 천 명의 성인이 났다고 해서 천성산이라고 불리게 됐다. 내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15교구 통도사 말사이다. 원효스님처럼 삼매의 힘으로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은 못하더라도 우리 눈이 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남을 위하는 일을 하고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청정 본연의 자세가 우리 이웃을 밝게 하며 사회질서를 회복시키는 지름길이 아닐까 다시 한 번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