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못비껴갈 ‘경제대란’

“절망의 벼랑끝에서 잡을 건 오히려 희망뿐”

자고 일어나니 당진이 또 유명해져 있었다. 지난 8일과 9일 사이에 퍼부은 비는 한보부도와 IMF의 파고를 타고 위축될대로 위축된 당진경제에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던 희망을 휩쓸고 가버렸다. 밀려온 물살을 못이기고 쓰러진 채 일어설 줄 모르는 논밭의 작물과 군데군데 파손된 도로·제방.

군이 집계한 작물과 공공시설의 피해액만도 2백여억원. 게다가 군내 각 상가의 개별 피해액을 집계한 결과 약 3백억에 이르는 재산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비로 군에서는 당진읍 신시장과 구시장, 천의시장 등이 통째로 물에 잠기는 등 사상 최대의 피해를 입었다.

이같은 재산상의 손실과 이어지는 소득감소로 군내의 구매력은 급격히 떨어져 가뜩이나 위축된 상가경기가 숨을 멎을듯 얼어붙을 전망.

수마가 할퀸 8·9일 이틀간은 크고 작은 수해복구작업으로 상행위가 일시 중단사태를 맞아 이들 상인을 주조합원으로 하는 금고·신협 등은 고객의 발길마저 끊겼다. 또 적금을 해약하고 공제를 해제하는 등 여파는 곧 제2금융권을으로 이어지고 있다.

모 신협의 간부 ㅅ씨는 “최근 예금금리가 떨어져 대출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경기가 서서히 풀려나갈 가능성이 있었으나 갑작스런 수해로 다시 주저않은 꼴”이라고 한탄했다.

군내 사업체들의 피해규모는 대부분 5백만원에서 2천만원 사이. 이들 사업체와 관련있는 한 경제인은 ‘한보부도에 비하면 그 피해규모가 적기 때문에 수해상처에서 곧 회복되리라’고 보았지만 이번 수해는 당진경제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 대다수의 영세·중소상가를 두루 휩쓸었는데다 많은 농가와 시내 주민들에게도 크고 작은 재산상의 손해를 끼쳐 주민들 입장에서는 체감피해범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한보부도가 사업자의 입장에서 깊은 상처를 낳았다면 IMF에 이은 수해는 나머지 전 주민에게도 상처를 입혀 당진군민 전체가 절망의 수렁에 빠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수해가 몰고 올 여파는 농산물 가격의 인상으로 먼저 나타날 전망이다. 또 현재 정부에서는 수해사업장에 대해 ‘저리융자혜택’ 등을 주어 지원한다는 대책이지만 한보부도 때처럼 은행창구에서 집행되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지적이다.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앞으로 대출신청 건수를 늘어나겠지만 이미 지금까지의 경제위기로 여신연체료도 많고 더이상 보증을 설 사람이나 담보로 잡힐 물건도 남아있지 않을 것으로 보여 함부로 대출할 수도 없는 실정”이라는 게 한 금융관계자의 말이다.

한편 좀더 냉정하게 본다면 유실된 도로복구사업 등 공공사업이 늘어나면서 군내 실업자 구제에 다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나 크게 기대할 정도는 아니라는 평이다.

절망에 빠진 당진경제. 그러나 강철은 단련될수록 강해진다고 했다. 한보부도와 IMF, 수해로 이어지는 경제대란 앞에서 망연자실해 있는 주민들의 말은 단순한 절망 이상의 것이다.

당진읍 상인 이모씨는 말한다.

“처음엔 황당했지만 하도 겪다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네요. 이왕 허리띠 졸라맨거 갈 때까지 가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