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신문 기사가 있었습니다. 서울의 한 다세대 주택 1층에 사는 할머니 한 분이 경찰에 전화를 걸어 “2층에 사는 할아버지가 집 안에서 걸어 다니면 발소리가 들리는데 며칠 전부터 발걸음 소리가 전혀 안 들려서 혹시 돌아가신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면서 빨리 와서 확인 좀 해달라는 부탁 전화였습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거실의 창문을 뜯고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80대인 할아버지는 이불을 덮고 반듯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경찰을 본 노인은, 눈을 깜박이는 것과 손가락으로 아들의 연락처를 가리키는 것 외에는 전혀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현재 우리사회는 인구 노령화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노인세대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거문화는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단독 주택이 없어지고 다세대 혹은 아파트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개인이나 가족 이기주의 성향이 강해지면서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층간 소음으로 인하여 이곳저곳에서 다툼이 일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웃의 생명까지도 해하는 경우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합니다. 이웃을 배려하지 못하고, 내 삶의 공간을 외부의 그 어떤 소리와도 차단하려는 현실에, 이 이야기는 우리의 이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 주는 기사였습니다.
소리를 포함하여 타인의 존재나 행위가 나의 영역으로 침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오히려 소음에 대한 대응이라는 명분으로 위층으로 소리를 전달하는 스피커까지 등장하여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할머니의 경우는 위층에서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발걸음 소리를 소음이 아닌 생명의 소리로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속에는 많은 소리가 있습니다. 살아 있기 때문에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소리를 통하여 이웃에게 내 존재를 알리는 것이고, 소리가 없다는 것은 생명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노라”고 예레미야 33장 3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6장에서도 보면, 애굽에서 포로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살이 삶에 지쳐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고통 섞인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들려오는 이웃의 소리는, ‘손잡아 달라’고 우리에게 보내는 애타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의 삶과 공간을 방해하는 단순한 소음으로만 여기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이웃에게서 어떤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까? 또 내게서는 어떤 소리가 이웃으로 전달되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을 단순한 소음이라고만 여겨야 할까요? 우리가 그토록 차단하고 싶은 이웃에게서 들려오는 소리는, 우리와 소통하고자 하는, 이웃이 살아 있다고 보내는 생명의 신호는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