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오늘날 사회가 시끄럽고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상대방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만을 고집하며 강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장 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비판하지 말라하여, 불의나 부정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는 하나님께서 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시편 12편) 이웃의 잘못을 찾으려고 애쓰지 말고, 이웃의 허물을 경솔하게 다른 사람에게 말해서도 안 됩니다. 그만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때때로 실수를 범한 이웃이 어떤 고통과 상처 속에서 괴로워하며 자책하고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공공연하게 떠드는,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미워하고 적대시하는 자들에게도 사랑으로 선대(先貸)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또한 위대한 사도 바울도 로마서 12장 20절과 21절에서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필연적으로 상호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흠을 들추어내거나, 실패를 꼬집거나, 잘못을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비난을 하게 되면, 비난이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물질세계와의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 자연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행동으로 인간들에게 대가를 되돌려 줍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판단을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다른 사람의 잘못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판하기 보다는 사랑을 베풀어야 하고, 실수를 들추는 것 보다는 덮어주겠다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집단이기주의에 집착한 나머지 혼란 속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고집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왕이 자신 앞에서 우스갯짓을 하며 항상 웃음을 주는 광대에게 하루는 지팡이를 주면서 너보다 더 멍청한 사람이 있으면 주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수년이 지났습니다. 왕이 죽게 되었을 때 ‘나는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떠난다’ 라고 말하자, 광대는 ‘그러면 여행을 위하여 준비는 하셨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왕은 전혀 준비한 것이 없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광대는 ‘저 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을 발견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지팡이를 왕에게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내 것이나 우리의 생각만을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타인의 마음도 헤아리고, 나와 이웃 그리고 우리사회, 더 나아가 영원한 삶을 생각하는 사색(思索)의 시간을 갖는 것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