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민들레일터(장애인직업재활시설, 당진시 신평면 소재)에서는 누구든 저마다의 일이 있다. 그리고 각 개인의 영역은 가급적 지켜주려고 하는데,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민들레일터에서는 누구든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그 사람을 찾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 사람이 할 일이 쌓였다는, 혹은 그 사람 때문에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아우성이다. 그때 찾는 대상이 되는 그 사람은 뿌듯한 표정을 짓는데, 그 표정은 자부심의 표현이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흐뭇한 일이다.

민들레일터에서 일하는 장애인 직원들은 일터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 항상 즐겁다. 단언컨대 월요병이 없다. 내가 일터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 그것이 그 즐거움의 원천이다. 이런 민들레일터의 풍경이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서만 기능하는 많은 현대인들의 고단한 일과 대비되면 과연 직업으로서의 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모든 사람은 일을 통해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독일 파더보른에는 오랜 전통의 시각장애 특수학교가 하나 있다. 단순 시각장애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지적장애와 시각장애를 함께 가진 중복장애 학생들이다.

그 중에는 하루 종일 휠체어에 의지한 채 생활하는 대부분의 감각 기능을 상실한 듯한 학생들도 있다. 그런데 그들이 일을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기계가 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계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분명 그 학생의 손가락이다. 버튼을 누르면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

그 학생의 목적은 시원한 바람이다. 어떻든 그 학생이 그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모든 작업 공정은 멈춘다. 휠체어를 탄 그 학생은 이미 이 작업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이 학생이 졸업할 즈음이 되면 인근의 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학교를 찾는다. 지원내용과 방법을 확인하면 그를 맞이할 준비에 들어간다. 그렇게 모든 사람은 일을 통해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서로를 위하는 모든 활동은 일이다.

스코틀랜드 에버딘에는 유럽형 공동체마을 캠프힐이 첫 걸음을 디딘 곳, 뉴튼디 커뮤니티가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가정을 이루고, 그리고 그 가정들이 모여 한 마을을 이루었다. 그곳에는 농장, 공방, 베이커리, 가게, 카페 등 여러 일터들이 있다. 돌보는 역할과 보살핌을 받는 역할로 구분 짓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그 마을에선 아침이 되면 모두가 일하러 간다.

어떤 이는 농장에서, 어떤 이는 공방에서, 어떤 이는 베이커리에서 그렇게 각자에게 맡겨진 일을 하는데, 어떤 이는 마을의 생산물을 각 가정에 배달하는 일이 전문이다. 또 어떤 이는 이웃집 정리하는 일을 돕는다.

일의 내용도, 일의 양도, 일하는 시간도 참 다양하다. 이 마을에선 서로를 위하는 모든 활동은 일이다. 중요한 일과 하찮은 일로 나누지 않는다. 능력껏 일하고, 함께 생산한 것은 필요에 따라 나눈다.

민들레일터, 그리고 민들레마을의 선택

민들레일터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는 일거리를 찾아 어떤 경우에도 예외 없이 모두를 일터에 꼭 필요한 존재로 만드는 일이 한 마리 토끼라면, 다른 또 하나의 토끼는 많은 수익을 창출해서 장애인 직원들의 독립적인 생활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정도의 급여를 주는 일이다.

사람들의 정성과 지혜가 모이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도 요원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양자택일의 극단적 선택을 요구한다 해도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다. 나로 인해 너희가, 너로 인해 우리가 행복한 길, 그것이 민들레일터,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 갈 민들레마을의 한결같은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