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본당(주임신부 김동규)이 설립 41주년을 맞이해 한정공소를 재조명했다.
천주교 대전교구 신평성당이 지난 17일 신평면 한정리에 위치한 한정공소에 대한 140주년 기념 심포지움을 개최했다.
이날 김동규 신평본당 주임신부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백미 사목회장의 환영사에 이어 윤태진 성지개발위원장의 사회로 심포지움이 진행됐다.
이어 제2부에서는 김정환 신부가 원머리 신앙공동체와 신평본당에 대해, 김문수 신부가 신평본당 내 근·현대 건축물인 공소건물 보존과 활용이란 주제로 발표했다.
이어 공소 역사에 대해 박재수 씨가 한정공소를, 정광영 씨가 매산공소에 대해 각각 증언했다.
김동규 주임신부는 “이곳에는 원머리 성지에 대한 지역 공동체의 교회사적 신앙 역사와 본당 내 근·현대 건축물인 공소 건물의 유래가 담겨 있다”며 “그 뿌리를 찾아 성지 성역화와 본당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심포지움을 개최하게 됐다”고 말했다.
<심포지움 내용 정리>
김정환 신부 (내포교회사연구소장)
‘원머리 신앙공동체와 신평 본당’
1784년 내포의 사도 이존창이 세례를 받고 고향 여사울로 내려와 복음을 전하자, 머지 않아 천주교가 전해졌다.
1780년대 후반에 이미 원머리에 신앙공동체가 형성됐으며 1791년 경에는 당진의 강문리와 우평(현재의 우강), 신평 신당에서 음섬으로 이어지는 삽교천 하류 지대에 천주교가 집단적으로 번성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렇게 형성된 내포 천주교회는 민중종교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신분과 남녀의 차별이 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과 재물을 나누는 공동체였다. 이후 1866년 병인박해가 발생하자 1868년까지 총 16명의 원머리 출신 순교자들이 생겨났다.
원머리와 주변 지역은 성장을 거듭해 신평지역에서 가장 큰 교세를 이뤘기에 1975년 신평본당이 설립될 때 중심 역할을 했다. 하지만 산업화로 인해 원머리 공동체는 점차 축소돼 지금은 작은 공소로 남아있다.
원머리 신앙 유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순교자들의 무덤이다. 또한 원머리 일대는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역사적인 공소들(한정리, 매산리, 음섬)이 밀집돼 있고, 강당 건물도 보존돼 있어 그 가치가 높다. 이 묘역은 한국 교회 안에서 보기 드물게 원형이 보존돼 있는 순교자 묘이기에 그 가치를 살려야 한다.
김문수 신부 (신합덕성당)
신평 본당 내 근·현대 건축물인 공소 건물 보전과 활용
이 지역은 교회사적으로 신앙의 역사가 축적된 장소며 건축적으로는 근대시기에 건립된 천주교 건축유산이기에 조명을 받기에 충분하다.
인근 원머리 성지는 박해시대에 관련한 신앙의 역사가 되고, 신앙의 자유 이후 근대시기 신앙의 중심은 한정공소라는 점에서 통합보다 다양성을 유지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