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경제 오리무중

“보상받을 수 없는 속칭‘깡어음’ 지하에 수백억 있다”

드러난 피해액만도 1천억에 육박하고 있는 가운데 한보의 부도사태로 당진군 지역경제가 비상사태를 맞고 있다. 당진군의 올 전체예산이 1,509억이라면 이 규모를 상상할 수 있을지...

한보에 대한 법정관리가 시작되면 적어도 1년, 제3자 인수가 이루어지더라도 최소한 6개월간 뾰족한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속에 그나마 한보의 방만한 운영으로 선뜻 관리를 자청하고 나서는 기업이 없어 풀어헤쳐진 당진경제는 당분간 수습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작게는 몇십만원에서 수십억까지 주민들의 피해상황과 얼어붙은 상가표정을 각계의 반응과 함께 살펴본다.

운송업 피해범위 엄청나

한보의 부도에 대해 최초로 집단적인 대응을 한 사람들은 한보의 고철원료 및 철근을 운송해온 운수업자들이었다. 일요일인 26일부터 한보공장 앞에 대형차량으로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기 시작한 운수업 종사자들은 한보 1, 2공장의 정상가동만 바라보고 거액을 들여 구입한 차량이 무용지물이 될 상황을 한탄하며 밀린 5개월치 운임을 달라고 한보측에 요구했다.

전국 각지의 17개 운송협력업체중 군내 7개 업체가 피해액으로 주장한 금액은 42억5천만원. 피해당사자는 대형, 공영, 대원, 호서, 가야, 대화, 대운등의 업주와 차주 5백명에 이르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신우운수의 김원희(51세)씨는 “눈 딱 감고 죽은듯이 살자는 각오로 가장 밑바닥 생활을 하고 있는 차주들은 완공된 뒤 취급물량을 기대하고 지입료, 차량할부금, 보험료등 한달 4백만원의 지출을 감당해왔으나 이제와서 밀린 운임마저 받기가 어렵게 됐다”고 울분을 이기지 못했다.

운송업자들에 따르면 한보는 한보철강 판매주식회사라는 제2의 회사를 두고 이들을 관리해 왔는데 지금은 이 회사가 흐지부지 없어져 이 회사명으로 발행한 어음을 환원하기조차 막막져버린 것이다.

그런데 군의 집계에는 한진운수와 신우운수등 피해규모가 꽤 큰 업체들이 빠져있어 실피해는 이보다 수십억이 더 될 것으로 보인다.

레미콘업계 큰 타격

레미콘 업계도 한일흥업(당진 구룡리)과 한선건업(신평 신흥리)이 10억대를 넘어서는등 8개 업체가 39억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접수됐다.

2공장 신축, 벽돌도 문제

합덕읍 운산리 새마을벽돌공장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보의 제2공장 건축으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한동안 하루 생산량의 대부분을 한보에 납품했던 이곳은 지난 5개월간 어음결재가 안돼 지금은 2억5천만원이나 밀렸다.

부도이후 생산과 공급이 거의 중단된 상태. 바쁘기만 하던 직원 15명도 김동환 사장의 걱정반 위로반 속에 어렵게 위기를 견디고 있다.

29일 오전 김동환 사장은 하청업자 채권단에 참여하기 위해 미팅이 약속된 한보 본사로 달려갔다.

긴축 시작된 전기업체

전기업체들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8개업체에 12억6천만원이 집계되었다. 흥원전기가 4억9백, 서룡(주)이 3억5천5백, 서광전기가 3억1천2백만원등 억대를 넘은 곳도 부지기수.

특히 규모가 큰 흥원전기(대표 신원균)는 제2공장에 코렉스 내선공사를 해주고 12월 공사비로 못받은 1억2천8백만원과 6월까지 이미 떨어진 어음을 포함, 가장 피해가 크다. 그래서 이 회사는 현장팀 20명등 직원에게 한달치 노임을 주지 못했다.

이 회사 현장담당 이남용(38세)씨는 “당장 써야할 돈인데 없으니 물건구입 못하고 노임도 못줘 어려움은 두배”라고 말한다. 전 같으면 박스로 갖다 썼을 복사용지도 벌써 낱장구입하고 있다.

“어렵사리 구정은 지내겠지만 매월 돌아오는 어음이 커질 수밖에 없어 정말 걱정입니다.”

쌀ㆍ식료품 깔린 돈 많아

각종 생필품에 있어서도 여기저기서 걱정이 태산같다. 당진읍 신시장에는 식료품점 10군데중 6군데 정도가 크고 작게 한보 협력업체가 드나드는 식당에 물건을 대왔다. 이들은 모두 1천만원~1억까지 물건값이 깔려있다. 피해품목도 컵라면, 커피, 잡화, 야채등 다양하다.

직원 구내식당 얼씬 못해

식료품점들이 고민하는 것은 자신들이 납품할 곳이 한보가 아니라는 데 있다. 한보는 하루 직원 식비가 자그마치 1천1백만원이나 되는 구내식당 납품을 철저히 외지에 한정해 군내 업체들은 근처 식당에 주로 납품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유일하게 한보 구내식당에 쌀을 공급해온 송악농협도 9천4백만원의 대금이 밀려있다. 한보와 자매결연을 맺었던 송악농협은 27일 이경훈 조합장이 직접 한보를 방문, 계속 쌀을 공급해줄 것을 약속했다.

한보에서 송악, 송산, 당진읍에 이르는 사이의 음식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곳 음식점들은 대부분 한보의 고객을 노려 잠시 수지가 좋았지만 지난 9월이후 점차 줄어드는 매상에 울상을 지어왔다.

군의 집계에 따르면 송산일대 13개 음식점이 2억2천만원의 피해를 입고 있으며 아직 송악쪽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중 농사짓던 땅을 팔아 중국집을 차렸던 서해반점이 4천5백만원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직원도 줄고 빚만 쌓인 식당

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직원 15명의 일손이 모자랄 지경이었던 송산면 능안숯불갈비. 서비스가 좋고 한꺼번에 120명 수용이 가능했던 능안은 한보와 그 하청업체들이 자주찾는 회식장소였다. 그러나 추석때부터 주춤한 경기로 이미 가족이 8명으로 줄어들었고 밀린 음식값도 3천5백만원 가량된다. 그러나 대부분 하청업체의 음식대금이라 수금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능안의 사장 이경용(38세)씨는 자신의 피해를 굳이 알리고 싶지 않다며 꼭 밀린돈만이 문제가 아니라 빨리 당진경제가 회복되어 서민들의 생활이 안정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책이 없습니다. 법적으로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답답하겠습니까?”

이경용씨는 정부가 과연 우리들같은 서민에게까지 신경을 써주겠느냐며 군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피해구제책 마련에 나서주길 희망했다.

빚져서 장사할 지경인 문구점

문구와 사무용품을 조달해오다 어느새 9천만원의 미수금이 쌓인 당진읍 일성상사. 3년전부터 노트, 필기구, 제도기 할 것 없이 한보나 그 협력업체, 사원아파트에서 요청만 들어오면 먼거리 마다않고 대도시를 누벼 좋은 물건을 싸게 조달해 왔다는 최병상(47세) 대표는 부도가 나기 바로 전날까지도 370만원어치를 납품할만큼 부지런히 일했다.

쌓인 연분 때문에 때로는 사무용품이 아닌 다른 물건까지 대신 사다주었고 얼마전에는 1대에 150만원씩하는 제도기 15대를 대출까지 받아가며 납품해주었다. 다행히 100% 세금계산서를 끊어 언젠가 해결이 될 거라고 위로는 해보지만 당분간 빚을 져서 장사할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지 않는다.

직원 경조사 꽃값도 밀려

꽃값도 적지 않다. 한보직원들의 경조사때 화한이나 꽃을 대주었던 당진읍 현대꽃집. 2~3개월 밀린 꽃값과 다 결재하지 못한 꽃값이 1천1백만원. 대표 김무환씨는 당진에 한보와 관련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할만큼 한보부도에 따른 여파를 실감하고 있다.

그런데 피해를 입은 상인이나 업주들은 대개 피해사실을 밝히기를 꺼려하고 있다. 밝힌다고 무슨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선량하고 성실한 사업으로 거래를 해온 것이지만 마치 자신들이 그동안 무슨 특혜라도 받아온 듯이 바라보는 일부의 시각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한결같은 말은 한보가 거래전에 반드시 서울의 도매가격을 확인해 보고나서 거래를 열기 때문에 마진을 크게 남길 수 없었다는 것이다.

썰렁한 상가, 교통량 90% 줄어

이외에도 한보에 생수를 공급해온 원봉상사, 기름값이 밀린 주유소, 판유리값이 밀린 유리집, 현수막이나 명찰값이 밀린 기획사, 사진ㆍ필름값이 밀린 사진관, 츄리닝값이 밀린 체육사, 하다못해 열쇠복제값마저 밀린 열쇠가게등 부도의 여파는 군민생활 곳곳에 손을 뻗고 있다.

소비가 극도로 위축돼 상가들은 전에없는 불경기를 겪고 있어서 “나도 간접적인 피해자”라는 입장들이다.

아무튼 한보의 부도이후 시내 큰 술집들이 차례차례 문을 닫고 있으며 식당의 불경기가 곧 다방의 불경기로 이어져 한보근처 식당배달을 주로 해온 모다방들은 문닫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부도후 당진읍내 교통량은 30%, 당진~송산~한보구간은 90%나 줄었다고 한다.

속칭 지하 ‘깡어음’ 수백억있다

그러나 실거래에 의한 채권, 말하자면 진짜외상이나 진성어음외에 지하유통된 어음(융통어음)도 적지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제보해온 몇몇 주민들에 따르면 속칭 ‘깡어음’을 몰래 갖고 있는 사람들의 돈도 수백억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ㅊ모씨는 몇천만원씩 여유돈을 갖고 있는 가정중에는 적어도 2~3천만원 규모의 한보의 어음을 갖고 있는 집이 많으며 이를 합하면 최소한 3백억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한보부도에 따른 군내의 실제피해는 군 전체예산인 1,509억에 맞먹거나 그것을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피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 1년이상 장기화될 수습전망을 볼 때 부도의 여파는 이제야 시작된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