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삼경중의 주역에 감괘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이 거듭 겹쳐 흘러가 사방을 검게 에워싼 형상을 말합니다.

감위수(坎爲水), 혹은 습감(習坎)이라고 불리는 괘이지요. 캄캄한 밤에, 시커먼 물이 흐르는 소리가 사방에 들리는데 한가운데 홀로 서있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대한민국이 그 모습입니다. 주위에 시커먼 물이 흘러넘쳐 어디 한군데 발 디딜 곳이 없고 사방천지가 암흑이며, 그나마도 발을 넣어봤자 깊이를 모르고 빠져 들어가는 물이 가득합니다.

“무엇이 필요하십니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아마도 “생존” 이라고 대답하지 않으실까 짐작해봅니다. 감괘에서 가장 요구되는 것은, 물이 사방으로 둘러싸인 시커먼 어둠속에서 어떻게 하면 살 수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에 잠기고 얼어붙어가는 발을 감당해내며, 밤이 끝날 때까지 버티는 사람의 긍정적인 정서입니다. 그리고 절망감과 두려움에 다 끝났다며 포기하는 마음, 그런 마음을 경계하는 사람의 이성입니다. 한국인들은 그것을 가졌기에, 지하철에서 불이나 사람들이 생으로 타죽고, 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배가 가라앉아 수백 명이 익사하는 중에 삶을 영위할 수가 있었습니다.

누가 도둑놈이고 강도인지를 모르고 살아온 세월이 아닙니다. 다 알면서 위정자들에게 늘 속고 내어주며, 돼지몰이 혹은 양떼몰이를 당하듯, 때가 되면 이념의 매를 맞고, 언제는 학력과 계층의 매를 맞고, 혹은 지역의 이름으로 매질을 당했습니다. 그래도 살았습니다. 사방천지가 어두움뿐이어도 살았습니다. 그 기록들, 시간들이 지금 대한민국의 자산이자, 유일한 희망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불가능해 보이는 생존을 해온 역사가 유전자에 각인된 사람들입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하는 자들을 보실 때에, 누가 세보이냐, 누가 나한테 잘해줄 것 같은가, 누가 나랑 같은 지역 출신이냐, 이런 것들을 보실 때가 아닙니다. 이제는 사방천지가 그 여느 때보다도 암흑입니다. 우방이 보이십니까? 믿고 맡길 뚜렷한 정치인이 보이십니까? 이 분야는 그래도 썩지 않았다 도덕적으로 합당해 보이는 조직이 있던가요? 이제는 종교조차 썩어서 술과 여자와 돈을 밝히는 자들이 수장의 자리에 앉기도 합니다. 사방천지, 어두움입니다.

누가 불타는 지하철에서 불을 끄고, 누가 전염병이 속출할 때 그 경로를 차단하는지, 누가 반쪽밖에 안 되는 이 작은 나라의 국경을 탐내고 넘어오려 할 때에 그 손과 발을 잡아채는지를, 누구에게 그 능력이 있는지를 밤낮으로 살피고 따지십시오. 누가 저 가라앉은 배를 건져 올릴 자인지, 누가 있어서 성폭행당하고 토막나는 시체를 시체가 되기 전에 찾아올 사람인지를 가려내십시오. 대통령이 되겠다 나서는 자들의 뒤에 내시처럼 서서 권력을 기다리는 자들 또한 낱낱이 살펴보십시오. 자식들은 군대에 다녀왔는지 저 사람이 성접대를 받지는 않았는지 성희롱을 일삼거나 성추행을 한 사람은 아닌지. 혹은 교수자리에서 제자의 논문을 가로채거나 고액의 선물을 받거나 연구비를 착복한 자가 아닌지를 보십시오.

나라가 어지러울 때 이때를 틈타 더 극악한 도둑놈들이 선한 얼굴을 하고 이 어두운 시대에 발만 간신히 서 있는 국민의 등을 쳐서 한 방울 남은 피마저 가렴주구하지 않을까 극도로 경계하고 따져야 하는 때입니다.

사방천지 어두운, 감괘.

이 어두움 속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 사람의 긍정적인 정서와, 냉철한 이성입니다. 지금 이 시기에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과 이성이, 그 어느 시대의 여느 국가의 어려운 역사속의 국민성보다, 더 혁신적이고 유능한 국민성으로 기록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