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딸아이가 컴퓨터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았다. 컴퓨터 속에는 팝업창 같은 것이 있었다. 알고 보니 팝업창은 딸아이와 친구들의 대화창이었다.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이 아이가 과연 공부를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불안감이었다. 그 순간 딸아이 나이였던 과거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됐다. 당시 나는 수화기를 잡고 친구들과 한참을 통화했고, 가족들의 눈치가 보여 동네 인적이 드문 공중전화를 찾아 수다를 떨었던 시절을 보냈다. 과거와 비교해보니 아이가 하는 채팅은 무척이나 세련되고 스마트한 소통 수단이다. 과연 우리 기성세대는 아이들과 얼마만큼의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잘 되고 사회적 구성원 중 상위 계층에서 살기를 기대하면서 교육지원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20년 전만해도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전국 석차 40% 안에는 들어야 단과대학 정도 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현재 대학은 학생 수보다 더 많이 존재하고 있으며 고학력으로 무장된 젊은 룸펜들과 단순노동을 지양하며, 현실을 뒤로 하는 젊은이들을 양산하는 상아탑 공장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대학에 보내려고 한다. 이는 그렇게 밖에 살아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린 기성세대들에게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은 세대 간 불통과 아이들의 의지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현상이다.

몇 년 전 개봉했던 영화 인디아나존스 4편에서 주인공인 존스박사에게 모르고 있던 아들이 찾아와 했던 대화가 기억난다. 아들은 아버지인 존스박사에게 자기의 과거를 이야기 하면서 국립학교에 입학해서 여러가지를 배웠지만 자신의 뜻과 맞지 않아서 학교를 그만두고 자신의 길을 간다는 내용의 대화를 한다. 이때 존스 박사는 진정한 고고학자가 되려면 학교와 도서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잘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청년이 자신의 아들이란 것을 알고 나서는 다시 학교에 복학하라고 화를 낸다. 그 때 아들은 잘했다고 학교를 벗어나서 실질적인 것을 배워야 한다고 했지 않았냐고 하자, 존스박사는 그때는 네가 내 아들이 아닌 몰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교육자인 아버지는 결국 공교육의 중요함과 실무가 아닌 엘리트 교육을 먼저 해야 한다고 결정했으며 내 자식에게 화이트칼라를 주려고 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긴 시 간동안 아들과 소통이 전혀 없이 살아 왔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렇게 이중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인간이 수천 년 동안 발전을 하면서 그와 발 맞춰 교육의 비약적 발전이 있어왔다. 이는 좀 더 편하고 획기적인 혁신을 꿈꾸는 인간들이 후대를 이어가기 위한 불가항력적 수단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인교육이 아닌 엘리트를 위한 양적발전은 사회적 심각한 모순을 가져왔고 이에 따른 각성이 뒤따랐으며 이는 교육의 평등과 소통의 교육을 내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앞으로의 미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커다란 명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찌 보면 인간의 삶이 윤택해질 수도 있고 다른 측면에서 보면 리드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의 이분법적인 상황이 발생될지도 모른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현재 충청남도는 참여교육을 확대 실시하고 있으며 자유학기 및 진로체험 학습의 확대를 노력 중이다. 또한 학생, 교사, 학부모 등 교육의 3주체가 협력하여 교육하며, 여기에 4주체인 마을 공동체 기업 등이 도움을 준다. 내실 있는 운영과 자유학기제의 성공적 정착 및 학생부 중심으로 변화하는 대입제도이다. 여기에는 맹점도 존재한다. 자유학기제의 확대와 학생부 중심 교육이 고교까지 연계가 확실하게 되어 대학진학으로 연결이 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일어날 폐해는 엄청나기 때문이다. 학력의 신장과 자유학기제 및 참여수업의 확대는 어찌 보면 양날의 칼날을 가지고 있다. 학력신장이 동반되지 않는 현장 참여 수업은 계획 하에 있는 결과물에 대한 변종을 양산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지식만 넣는 것이 진정한 교육은 아니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양적 질적으로 좋은 교육의 장으로 아이를 보내려고 하는 것은 부모들의 바람일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소통이 필요한 것이며, 현재 교육의 혁신을 주장하는 사람들 또한 구 교육을 받아왔고 그만큼 주입식 양적 교육의 문제점을 잘 알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교육과 산업의 혁신에 기로에 놓여 있다. 교육의 주체인 학생 학부모 교사 지역사회가 하나가 되어 아이들과의 진정한 소통을 이끌어 낸다면 탄탄한 이 지역의 구성원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