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의 산이 사라진다
90년대 들어 무더기 허가, 현재 28군데 파헤쳐져
산많은 아산도 4군데 뿐인데, 마구잡이 허가가 문제
당진의 산이 다이나마이트와 중장비의 굉음에 허물어져 가고 있다. 한보의 백만평 매립공사를 필두로 석문국가공단, 고대ㆍ부곡공단 등이 줄줄이 조성되면서 그나마 빈약한 당진의 산은 공사장 골재로 상납되고 있다. 한보부도로 지역경제가 얼어붙었다는 지금도 채석허가를 받으려는 이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채석장 스물여덟군데, 당진의 명산이라고 불리던 산에는 이제 거의 다 채석을 알리는 붉은 깃발이 꽂혀있다. 올해는 대호지의 명산 지르미산, 순성의 아미산 자락도 파헤쳐지게 됐다. 물론 모두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한번 파헤쳐진 산은 영원히 원상복구되지 않는다. 이윤추구에만 눈이 먼 일부 대기업들이 환경은 뒷전이듯 ‘노다지’ 캐내기에 급급한 업자들도 훼손된 산림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정미면 승산리 부엉배산. 부엉이가 많이 운다고 해 그렇게 이름 붙여진 이 산은 거의 80도 경사에 가까운 가파른 산으로 사람도 오르지 못했다. 상여모양의 바위와 그 옆엔 바로 요요모양의 바위가 있어 주변 주민들은 이 산을 위엄스러운 곳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현재 이 산은 한 귀퉁이가 심하게 파헤쳐져 흉물로 전락했다. 시뻘겋게 속살을 드러낸 이 산은 대호지에서 당진방면으로 통하는 지방도와 얼마전 개통된 서산으로 가는 지방도 649선에서도 훤히 보여 오가는 이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이 산이 채석에 들어가기 시작한게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하는 주민은 없다. 10여년전 장규순 군수 시절쯤으로 기억할 뿐이다. 그동안 사업자도 수없이 바뀌었다. 그때마다 허가기간이 연장되거나 재허가가 거듭되어 오다가 3년전쯤 사업자가 부도를 낸 뒤 지금까지 복구가 안된 채 방치되고 있다. 파헤쳐진 산중턱엔 바위만한 돌덩어리들이 아슬아슬하게 걸쳐있어 언제 아래로 곤두박질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진입로를 내느라 산밑자락에 골깊게 파놓은 뻘건 황토흙길은 곧바로 지방도와 연결되어 있어 먼지깨나 일으켰을 성싶다.
오히려 공사가 중단돼 살만하게 됐다는 인근의 한 주민은 “발파때나 산에 구멍을 뚫는 공사를 할 때는 전화벨 소리도 못들을 정도로 소음이 심했다”며 “뭐라고 얘기하면 윽박지르는 업자가 있었는가 하면 방음벽을 해주겠다고 해놓고 약속을 안지키는 업자도 있어 속만 끓였다”고 목청을 높였다.
또 한 주민은 “골재야적장으로 논을 빌려준 사람들이 3년째 도지를 못받고 있다”며 “본래 가파른 산인데다 워낙 험하게 파먹어 제대로 복구가 될지 의심스럽다”고 혀를 찼다.
군 관계자는 “매장량이나 석질이 좋지않아 타산이 안맞자 공사를 그만 둔 것으로 보인다”며 “수허가자가 예치한 보험금을 청구해 곧 대행복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미면 수당리 봉화산, 가을단풍이 곱다는 바로 옆 은봉산과 이어져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던 이곳도 90년도 채석에 들어가 거의 봉우리 꼭대기까지 파헤쳐 놓은 상태다. 기암괴석이 많아 보존해 두었더라면 관광지등 뭐가 됐어도 됐을 곳이라는 게 주민들의 한결같은 소리다.
이곳은 또한 국가지정보물인 안국사지 석탑과 석불이 가까이 있고 주춧돌까지 남아있는 안국사터가 바로 옆에 있어 당진의 문화유적지 1호로 꼽히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훼손되어서는 안될 곳이라는 것이다.
주민들의 농업용수원인 저수지 바로 윗편에 있는 이 채석장은 70년대 수해방지를 위해 정부에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조림사업을 했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채석이 시작되면서 우거졌던 숲도 사라지고 숱한 민원을 불러일으키며 지난 95년 마침내 허가가 취소된 이 채석장은 2년이 다된 지금까지 복구가 되지않아 큰 비라도 한번 내리면 금방 씻겨내릴 태세다.
가파르게 깎이고 들쑥날쑥 질서없이 헤집어 놓은 꼴이 마치 폭격을 맞은 전쟁터를 연상하게 할 정도다. 그럼에도 군은 전사업자가 자금난에 몰리자 새 사업자에게 다시 채석허가를 내줘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한보부도가 나면서 공사를 중단한 송산면 동곡리 채석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 93년부터 공사가 시작된 이곳은 본래 토사채취를 목적으로 했으나 땅밑으로 파고 들어가면서 돌이 나오자 허가연장, 재허가를 거듭 받아내면서 1만평이 넘게 굴착을 해놓았다. 그리고 한보부도로 납품할 곳이 없어지자 지난 2월 자금난을 이유로 휴업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그대로 방치되어있다.
지난 4월말일로 허가기간이 끝난 이곳은 지표로부터 10여m 이상이나 파들어가 언제까지 복구가 가능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98년말까지 허가가 나있는 다른 한곳도 역시 깊게 파놓아 키큰 어른도 완전히 잠길만큼 시퍼런 물이 가득 고여있어 보기만해도 아찔하다.
근처에서 논일을 하던 한 주민은 “너무 깊게 파놓아 복구하려면 웬만한 양의 흙 갖고는 어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문면 초락도리 해창낚시터의 끝부분에 있는 동선레저산업(주)의 채석장. 비포장도로길 바로 옆에 위치한 이곳도 공사를 중단한 지 3개월이 지났으나 안전표지판 하나없이 위험한 몰골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다.
이처럼 파헤쳐 놓기만 하고 공사가 중단된 채석장은 무려 10여 군데에 이르고 있다.
토석채취로 3년간 산림 50만평 훼손돼
당진군에 따르면 현재 군내 채석허가지는 모두 28군데에 이르고 있다. 이는 산이 많은 인근 아산시가 4군데의 채석장이 있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엄청난 수치이다. 물론 매장량의 차이가 있겠지만 올망졸망한 야산들까지 파헤쳐지고 있는 당진의 현실은 환경적으로 훨씬 심각하다는 얘기다.
지난 96년 군 행정감사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94년부터 3년동안 군내 채석 및 토사채취허가 건수는 총 71건으로 50여만평에 이르는 산림이 훼손됐다. 여기에 공장부지 조성등을 위한 산림형질변경 허가건수를 따진다면 훼손면적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훼손된 50만평중 96년말을 기준으로 복구된 면적은 10만평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허가기간이 연장되면서 복구기간도 함께 연장된 경우이거나 훼손된 장소에 또다시 허가가 나간 경우등이다.
채석허가기간은 보통 1년, 길어야 2년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군내 대부분의 채석장은 정미 승산리처럼 10년이 넘는 경우도 있고, 5년이고 6년이고 계속 연장 또는 재허가를 받아내면서 이어지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처럼 허가기간이 끝도없이 늘어나는 것은 대부분 자금능력이 없는 영세한 사업자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채석에 손을 댄 뒤 자금난에 부딪혀 파행적으로 석산을 운영해 나가기 때문이다. 즉 지질조사등 전문적인 타당성 조사나 경제성에 대한 검토없이 무작정 사업에 들어가 예상대로 돌이 나오지 않거나 석질이 좋지 않을 경우 또는 납품처가 여의치 않을 경우 곧바로 자금난에 부딪혀 이른바 ‘돈줄’을 찾아다니게 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업자가 수시로 바뀌는 한편 훼손된 산림에 대한 복구는 뒷전으로 하고 새 법인을 설립해 다른 곳에 또 허가를 내는 업자도 있다. 이러는 과정에서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자연과 주민들이다. 수당리의 경우처럼 재해방지대책에 소홀해 토사를 흘러내리게 하거나 민원해결 약속을 지키지 않아 주민들의 불만을 사는 경우도 많다.
파헤치는 건 10년, 복구는 눈가림식
이처럼 군내 대부분의 채석장이 영세하다 보니 ‘돈 들어가는’ 복구에 신경쓸리 만무하다. 하나의 산을 놓고 수많은 사업자가 돌아가면서 파헤치는 기간은 5년, 10년 계속되지만 이에 대한 복구는 눈가림식의 형식적인 수준에 그친다.
석산복구를 전문으로 하는 한 사업자는 “산세를 봐가며 신경써서 채석을 한 경우는 복구비도 많이 들어가지 않지만 매장되어있는 돌만 보고 함부로 파내다 보니 제대로 복구하려면 꽤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며 “그러나 업자들은 가급적 돈이 덜 먹히는 공정을 주문해 충분히 복구를 해 놓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물론 복구가 제대로 됐는지 미흡한지를 판단하는 것은 허가기관인 군이다. 설계대로 복구가 되었다면 복구승인을 내주고 그렇지 않으면 보완지시를 내린다. 그러나 그 판단의 객관성에 많은 이들이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석산을 운영한 적 있다는 건설업자 이모씨(당진읍)의 말을 들어보자.
“복구승인을 내주는 것은 그날 현장에 나온 담당공무원이다. 공무원과 업자는 인허가에서부터 붙어살다시피 한다. 회 한접시 얻어 먹을 수도 있고 떡값이 오갈 수도 있다. 쉬운말로 잘보이면 복구가 좀 허술해도 오케이이고 밉보이면 제대로 됐어도 퇴짜를 놓는다. 원칙대로만 한다면 석산이 문제될 것은 없다. 인맥등 갖가지 사사로운 감정이 끼어들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는 이어 “허가과정에서부터 군이 사업자를 배제시키고 주민들을 상대로 암행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고 복구승인에 있어서도 주민들을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구잡이 허가가 문제다
당진군은 올들어 벌써 두건의 채석허가를 내주었다.(재허가 제외) 기우제를 지내던 대호지의 명산으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던 조금리 산62번지, 일명 지르미산과 순성면 성북리 산71번지 바로 아미산 자락이다. 채석수량이 백만루베가 넘거나 이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산림훼손면적은 두곳 모두 1만5천평을 넘고 있다. 이로써 채석은 합덕ㆍ우강을 제외한 당진군의 전역에 걸쳐 이뤄지게 되었다.
한보부도로 지역경제가 얼어붙었다지만 채석허가를 받으려는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군 관계자는 한보가 다시 가동되고 석문공단ㆍ부곡공단, 지방도 615호선 확포장사업등 굵직한 사업들이 남아있어 앞으로도 골재수요량이 많을 것이라며 “요즈음에도 많게는 하루 서너건의 채석허가 신청이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골재생산이 꼭 필요하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문제는 무분별하다는 데 있다. 훼손되어서는 안될 산이 법의 보호(?)아래 무차별 파헤쳐지고 골재생산의 제역할을 해내지 못할 산마저 들쑤셔놓은 채 복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자연훼손과 함께 채석장을 둘러싸고 찬반을 따지다 사이좋은 이웃간에도 금이 가 버리는 마을공동체의 붕괴현상이다.
김낙성 군수는 무분별한 산림훼손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산을 절개하는 허가는 내주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즉 봉우리째 들어내고 새롭게 생겨난 부지를 활용해 토지 이용도를 높여나가겠다는 것이다. 좋은 발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지 않았다. 단순히 사업자로부터 약속을 받아내는 수준이다. 계속적으로 ‘노다지’가 나오는 데 봉우리를 들어냈다고 손을 뗄 사업자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법적인 하자가 없다는 이유로 채석허가를 남발해 온 전례도 제고해 보아야 할 문제다. 이에 대해 한 주민은 “법적으로만 따진다면 공무원도 필요없고 컴퓨터만 있으면 된다”고 비유한다.
허가기관이 자치단체인 만큼 허가에 있어 자체조례를 제정한다든지 특별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분별한 산림훼손을 막는 것이 전적으로 허가권을 쥔 자치단체에 달려있다는 엄중한 경고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