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희 / 석문공해공단 반대투쟁위 집행위원장
“울산의 불행, 당진의 선택”
겨우 3만에 불과하던 인구가 이제 1백만을 넘는 거대한 도시로 발전하여 광역시 승격을 목전에 두고 높은 자립도를 자랑하는 울산과 온산공단지역을 돌아본 소회는 실로 놀랍고 착잡하기 그지없다. 남의 지역일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는 것은 오지랖이 넓어서가 아니라 개발의 환상에 젖어있는 당진의 미래를 여기와서 미리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한때 석유화학공장의 높은 굴뚝에서 뿜어나오는 검은 연기는 이 나라 경제개발의 신호탄이었고 중화학공업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도약과 성장을 선도해온 울산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해 보면서 인간의 무지와 무모함이 무서운 재앙을 자초한 것이란 자괴어린 탄식이 절로 나오게 된다.
이 땅에 진정 백성을 위한 정치나 행정은 존재 하는가? 또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지키기 위한 의지와 노력이 있었던가? 개발의 참의미는 무엇이며, 누굴위한 개발인가? 경제란 무엇이며, 풍요의 과실은 누구의 몫이 되었는가? 도시가 커지고 인구가 많아서 좋은 것은 무엇이고, 늘어난 사람들이 어떤 보탬이 됐는가? 기업의 존재가치는 무엇이고, 기업이익과 인간 삶의 관계는 어떻게 상충하는가?
돌아보는 곳마다 내내 계속 던져지는 의문사들이 해답 과녘을 찾지 못하고 마음만 무겁게 한다. 이렇게 마구 파헤쳐도 되는 것일까? 이토록 무책임하게 버려도 되는 것일까? 남은 다치고 병들고 죽어도 상관없단 말인가?
대다수의 주민들이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지역, 울산은 이제 환경도 사회문제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불행해진 땅, 울산을 돌아보면서 불안한 공포감이 엄습해 옴을 느끼는 것은 오늘 울산의 불행이 내일 당진의 불행으로 이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공룡의 무리처럼 즐비하게 들어선 공장과 공해시설, 무수히 치솟아 밤낮없이 뿜어대는 불기둥과 매연, 곧바로 바다와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암적색 공장폐수, 시커멓게 썩어버린 해변과 하천바닥, 폭격맞은 전쟁터 잔해처럼 을씨년스런 이주마을, 거대한 저유탱크 위로 지나가는 고압선, 동네와 학교옆에 세워진 소각장과 산을 이룬 산업쓰레기와 잿더미등 매연과 악취와 소음이 복합된 공해의 집합장이 바로 그곳이었다.
전설속의 처용암도, 고래잡이로 흥청대던 장생포도, 한폭의 그림같던 빼어난 경관과 천혜적 조건을 지녔던 이진리와 우봉마을도 모두 여지없이 도륙당하고 있었다. 그 뿐인가. 공단주변의 산들은 거의 수목을 볼 수 없는 민둥산으로 변해 있었다. 거대한 화약고를 안고 살아가는 울산에는 환경도, 안전도 느끼지 못하는 간 큰 사람들만 사는 것으로 보였다.
이제 어찌 해 볼 수 없는 지경까지 되어 다들 체념하고 만 것일까? 어느 한곳도 쾌적이란 찾아 볼 수 없는 현장들을 돌아보며 이 나라 환경정책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도저히 사람살기 어려운 곳이 되고 말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공해 1번지」라는 오명을 얻은 울산의 불행을 맨 앞줄에서 저질러온 기업이 유공이라는 사실이 당진사람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입주자격조차 없는 유공이 석문공단을 노리고, 재벌기업답지 못한 치졸한 방법으로 주민들을 현혹시키면서 혼란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군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대단히 유감스런 처사라고 보일 뿐이다. 유공은 즉각 중단하고 손을 떼야 마땅하다.
또한 시행청인 충남도 당국도 울산의 불행을 직시하여 유공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고 당진군민의 생존을 지켜주는 쪽으로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새로운 선택을 위해 방향을 돌려야만 한다.
정책당국도, 우리군민도 개발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오늘만 살고 말 이 땅이 아니기에 먼훗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도 지금 우리는 바른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온 것이다. 그 선택은 몇십년이 아닌 백년, 천년앞을 내다보는 긴 안목의 선택이어야 한다. 환경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고, 환경에서 앞서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