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일출 못보고 간 10만 인파의 가슴에도 왜목을 불씨처럼 남게 한 사람
최·평·곤
장편 서사시같은 긴 호흡으로
그가 우리 앞에 던지는 질문
한 세기와 한 터울의 천년을 마감하고 새날을 맞이하기 위해 무려 10만의 인파가 몰려들었던 왜목에 사람들은 가고 겨울비가 와서 내리고 있다. 그곳에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거구의 대나무 인간들이 장승처럼 서서 수그린 어깨 위에 비를 맞고 있다. 초연해 보이기도, 어찌보면 슬퍼보이기도 한다.
밀물 때면 머리까지 잠기는 바다 맨 첫발치의 사람부터 뭍으로 걸어나와 도로를 훌쩍 건너고 논밭을 밟고 선 사람까지, 모두 열아홉 개에 이르는 대나무 인간은 흡사 우리가 그 틈바구니에 끼어 살아온 1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인간 진화의 역사를 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이 한결같이 고개를 꺾고 어깨를 웅크린 것은 진화의 다른 한쪽 면을 구성하는 인간 쇠락의 길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진화, 인간의 문명화는 다른 한편으로는 틀림없이 자연에서 인간이 멀어지고 분리되어온 과정이다. 그래서 위대하고 그래서 한편 슬퍼 보인다. 작품을 통해 작가가 던진 질문은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그 답은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몫이다.
작품은 음력 정월 대보름 불에 태워 없앨 때까지 이곳 왜목에 있을 것이다.
12월31일 설치작업전을 열고 나서 최평곤(42세, 화가, 세종대 서양화과 졸업)씨는 며칠간 호되게 앓았다. 사람들이 왜목의 일몰·일출 광경에 앞서 작품의 장중함에 흥분하고 있을 때 그는 이제 좀 쉬어도 되겠다는 생각에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아미산 대나무를 잘게 쪼개어 엮은, 무려 12m나 되는 인간형상 열아홉 개를 만들고, 굴삭기·포크레인·전봇대를 동원해 왜목에 설치작업을 마치기까지 지난 4개월은 그에게 짧고도 긴 시간이었다.
설치전이 개막된 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외도 아닌 외도를 했습니다. 이제야 내가 가야할 길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머리가 아니라 힘으로 만들었습니다.”라고.
‘외도 아닌 외도’란 '천상 화가'인 그가 지역시민운동에 몸담아 중심에서 일해온 지난 10년간의 생활을 말한다. 그래서 최평곤이라는 이가 화가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동안의 외도가 자연과 양심을 열렬히 사랑하는 그의 천부적인 예술적 기질 때문이었음을 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그의 말대로 ‘머리를 뺐다’. 현실에 대한 판단과 분석과 계산을 뺐다. 그 자리에 자신의 온몸으로 느끼는 자연과 인간, 역사에 대한 느낌과 통찰력과 거기서 나오는 열정의 힘을 쏟아 혹독한 ‘노동(?)’을 한 것이다. 거기에는 자신에 대한 독한 채찍질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힘이다. 힘은 머리에서 나오지 않고 가슴에서 나온다. 우리의 가슴에는 자연이 흐른다. 자연은 질서이며 양심이며 창조의 원동력이다. 자연과 호흡하며 자연을 재구성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자연이다. 그야말로 진정한 예술가다.
최평곤씨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이 작품은 제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한 일은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해낸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그의 죽마고우들, 그의 그림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행복한 놈이다. 네가 이 지역에 사람답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몸살을 앓고 다시 일어난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이런 것이다.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누워 평화롭게 반짝이는 칼날, 그 위에서 맨발로 칼춤을 출 수 있을 것 같은 바로 그 칼의 임자라는 것. 인생이건 예술이건, 중용이란 날 세운 칼처럼 치우침이 없는 극도의 절제상태라고 하지 않았던가.
김태숙 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