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수 연재

고대면 성산1리-퇴메라 불리던 김해김씨 집성촌

고구려와 백제의 각축장이었던 태성재 정상엔 누각이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좋은 터의 개념은 바뀌지 않는다. 그런면에서 이곳 당진은 풍수피해는 물론 설해ㆍ냉해등 자연피해가 비켜가는 천혜의 고장이라 수천년 대를 물려 살아오면서도 타지역에 비해 별다른 기복없이 안온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빠르게 전개되는 산업화의 물결로 인해 우리고장에도 급속도로 굴뚝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낙원과 같던 갯펄들은 대단위 물막이 공사로 황폐화 된 지 오래다. 전형적인 반농반어의 직업적 형태를 지니던 갯벌 인근의 주민들은 주소득원이던 낙지잡이, 굴채취, 게잡이등 갯벌이 있는 한 영구한 고부가치의 사업장을 잃어버린 채 얼마안되는 농사채를 부여안고 살아가고 있는 형편이다.

소개하고자 하는 곳은 현재 석문국가산업단지의 주택지구로 묶여있는 고대면 성산1리 지역이다. 이 지역은 옛지명이 퇴메로 불렸다. 퇴메란 토뫼(土山)란 어원을 갖는다.

야산으로 성처럼 둘러쳐진 이곳은 몇년전 충남대 학술조사단이 밝혔듯이 성채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마을뒷산인 태성재 정상엔 누각이 섰던 자리가 있으며 부식된 화살촉이 발견되곤 하였다.

이곳은 한 때 고구려와 백제의 각축장이었으며 후일 백제 부흥군을 돕기 위해 민물을 타고 장항포구(장항리)로 상륙하려던 왜선 4백여척이 매복하고 있던 당나라 수군에 의해 전멸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물길이 막혀 거센 물살이 흐르던 보덕포엔 환영철강이 들어서 있지만 옛날엔 성산2리까지 바닷물이 찼었다. 반대편으로는 초락도와 성산3리를 거친 밀물이 성산2리에서 만나는 합수지점이 있었던 것으로 구전되어진다.

한마디로 석문면 일원이 큰 섬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던 모양이다. 예로부터 태풍의 영향이 거의 없었던 이곳은 조류조차 완만하여 선박의 운항이 편했으므로 샌동반도와의 교류로서의 역할에 중요한 몫을 하였다.

이 지역은 가끔씩 발견되는 조그만 패총과 마제석기(돌칼)로 미루어 선사시대부터 삶의 터전이었음이 분명하다. 퇴메지역 43가구중 30여가구가 넓게 김해김씨로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최씨와 손씨등 다른 가계들과는 혼인관계로 남일 수 없는 사람들이 섞여서 살고 있다. 현재 이중 22가구가 석문국가산업단지의 주택지구로 묶여있으니 만약 수용이 된다면 320년 13대를 이어온 집성촌으로서의 취락구조는 와해될 것이 틀림없다.

유공입주문제로 군 전체가 떠들썩한 이때 이들 당사자들조차 한동안 찬반여론이 엇갈렸으나 지금은 경제논리보다도 환경의식이 앞서는 분위기다. 여기에다 나는 ‘고향지키기’의 의미를 하나 더하고자 하는 것이다.

해경산(주위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올라 주위를 살펴보면 산자락마다 능선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없다. 오늘날 우리가 이 땅에 뿌리박고 살면서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될 때이다. 축복받은 땅이란 별게 아니다. 산이 거기 있고, 물이 거기 있고, 사람이 거기 있는 곳이다.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산이 떼내어지고 물길이 막히고 사람이 떠나가면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해명산 뻗어내려 이 고장되고 우렁찬 파도소리 힘을 돋우네” 석문초등학교 교가의 일부이다.

ㆍ1960년생

ㆍ당진읍 읍내리 6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