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자 박호선씨

군불없이 겨울나는 선천성 장애자 박호선씨

"여길 뜨면 선산에 묻힌 부모님은 누가 돌봐유?”

담배값 아껴 키우는 강아지가 유일한 가족.

포근한 어머니의 젓가슴모양 얕은 구릉이 구슬을 꿰어엮는 염주를 깊게 눕힌 형상을 하고있는 마을이 재오지 부락이다. 구릉을 따라 사과밭이 가지런하게 줄을 서 있고 목장이랑 돈사가 군데군데 눈에 들어오니 퍽이나 부유한 마을이란 생각이 든다.

구릉과 구릉의 골짜기에는 논의 정지작업이 한창이라 불도저와 포크레인의 굉음도 한가로운 농촌의 분위기를 돋구는 농악소리와 같이 들려온다. 이 평화로운 마을에서 밀양 박씨들이 몇대째 터를 잡고 살고 있다.

박호선(58세)씨가 아버지 박인규씨와 어머니 이씨 사이에서 출생하여 오늘까지 살고있는 곳이 합덕읍 재오지 부락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왼발과 왼팔을 못쓰는 장애자였다. 게다가 그는 문맹으로, 가난과 천대받음으로 눈물로 성장했다는 기억에 가슴을 가득메운 한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나 부모님이 생존하고 계실때는 가난하고 천대를 받고 살었지만 외롭거나 쓸쓸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장승백이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성장하였는데 합덕 고덕간의 신작로가 뚫리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후에는 문중산의 솔나무 숲속에 움막을 치고 혼자 기거를 하게 됐다. 이때에는 불구의 몸이지만 젊었기 때문에 한손에 지팡이를 짚고 문전걸식을 할 수 있어 지금보다 형편이 좋았다고 한다.

외딴 움막집에서 살고있는 박호선씨를 부락청년회(회장 박승규)에서 자금과 인력을 갹출하여 지금의 집(대지는 박씨문중의 땅)을 지어 주었고 마당에는 지하수를 파고 모터를 장치, 간이수도까지 설치해주었다. 비록 방한칸과 부엌한칸의 작은 집이지만 숲속의 움막집에 비하면 대궐같다고 무척 좋아한다. 뿐만 아니라 마을 안에 집이 있기 때문에 부락 사람들의 보살핌도 받을 수 있어 외로움이 훨씬 줄어들었다고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불구의 몸으로 얻어먹고 살고 있지만 천성적으로 마음씨는 착해 부락사람들에게 피해를 입고는 살지 않었던 덕인지 어느날 박호선씨가 외출했다가 늦게 돌아오니 부엌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며 쭈그리고 불을 쬐고 있는 할머니가 있더란다. 처음 보는 순간 놀래 누구냐고 소리를 질렀지만 대답은 없이 희죽희죽 웃기만 하고 있다. 몇번이고 큰소리를 쳤으나 반응은 없고 날씨는 춥고 밖은 어두워 칠흑이 되었음으로 할머니를 방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이때가 지금으로 부터 십여년전 일이다. 그후 할머니는 좀 실성은 하였지만 박씨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함께 살았다. 빨래를 해주고 밥을 얻어다 같이 먹기도 했다. 땔감도 긁어다가 방을 따뜻하게 불을 때주며 그야말로 스윗트홈을 이루게 된 것이다. 박호선씨는 50세쯤에 까까머리에서 상투를 틀게 된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서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일생동안 제일 좋은 때였다고 회상한다. 호사다마라 할까. 할머니의 시중도 이제는 옛 추억속에 간직할 일로 3년전에 저승길을 떠나버렸다.

실례를 무릅쓰고 방문을 열어보니 단칸 방에 온갖 잡동사니가 널려있다. 궤짝에 밥그릇, 냄비, 양은 솥, 흑백TV, 심지어 요강까지 함께 뒹군다. 방바닥을 만져보니 얼음장같이 차가운데 습기까지 차 있다. 겨우 전기장판에 담요 한장 뿐이다. 추워서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니 연탄은 몇백장(보호대상자로 정부에서 쌀과 연료대를 지급받는다) 있는데 작년에 연탄가스에 질식되어 몇번이고 사경을 헤매이고 나니 이제는 무서워 연탄을 피울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몸이 불편하여 연탄 갈기도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어렵게 사느니 양로원이나 보호시설로 들어가 사는것이 좋지 않느냐고 물으니 “내가 여기를 떠나면 선산에 묻히신 부모님의 산소를 누가 돌보아 주느냐”고 떠날수 없는 이유를 딱 잘라 말을 한다. 희망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하니 조상들에게 손이 끊겨 안타까운 일이라. 대를 이을 자식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부모님 묘소에는 철따라 올라가서 깨끗하게 가꾸어 놓았다고 덧붙인다. 취재갈 때 채사장님의 도움으로 잠바를 선물하니 설날에 묘소에 갈때 입겠다고 벽에 걸어두는 것이다. 지금도 봄잠바를 입고 덜덜 떨고 있는데 몇푼 안돼는 돈에서도 담배값을 아껴 사료를 구입하여 개를 기르고 있다. 독구라는 이 중강아지가 유일한 아들로서 박호선씨의 마음 깊디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서금구/당진시대 객원기자

합덕대건노인대학장

(0457)363-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