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명 할아버지

합덕 운산리 윤희명 할아버지

“열여덟살에 강제징용, 생지옥살이를 했지”

젖먹이 딸 셋 남정네 혼자 키워

합덕읍 운산리!

보통 평범한 농촌의 소읍이며 읍사무소가 자리한 곳이 운산리이다.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하고, 도로의 발달로 도시가 건설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인데 합덕읍은 삽교천 제방이 완성되면서 서울로 통하는 도로가 비껴가는 바람에 전원도시로의 제구실도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명은 운치를 품고있지 않은가? 흰구름이 산세를 이루었다고 운산리던가? 구름에 휘감기어 아늑하면서 아스라히 신비의 베일을 쓰고있다하여 운산리던가? 하기사 지금으로부터 7~80년전만 하여도 서해가 밀물이 들때는 합덕의 들판이 바다로 변하여 배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였으므로 뱃잔등에서 올려다 보는 운산리는 흰구름에 덮여 었었을 법하다. 구름 얘기를 하다보니 고려시대의 이규보의 시귀절이 생각나 여기에 옮긴다.

「구름이란 극히 자유로우면서 변화를 헤아릴 길 없어, 훨훨 펼쳐지는 것은 군자의 나아감이요, 슬쩍 거둬들임은 높은 선비의 숨음이요, 비를 내려 가뭄을 풀어줌은 인(仁)이요, 오는곳도 없고 가는곳도 없음은 통(通)함이요, 빛의 푸르고 누르고 붉고 검은것도 구름의 바른 빛깔이 아니며 오직 흰 것만이 구름의 떳떳한 빛이다.」

합덕 운산리 인덕에 자리잡은 천주교회 남쪽 자락에 머리를 숙여야 들어설수 있는 얕은 집에 30년째 살고있는 윤리명(71세)노인을 찾은것은 따뜻한 봄날씨 같은 입춘이 한치앞에 다가선 오후였다.

윤희명씨는 연세보다 더 늙어보였으니 요새 건강한 노인 70세면 청년층에 끼어들 수 있건만 왜 이렇게 연로하였을까. 목발을 짚고 나오시기에 물었더니 작년 여름에 토방을 나서다가 넘어져 왼쪽 허벅지 신경이 마비되어 걷지를 못해 목발을 양 겨드랑이에 끼고 다닌다 한다. 혼자 살아 잡수실 것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시니 영양실조로 상처가 깊어진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윤희명 할아버지는 송산면 유곡리에서 출생하여 15세때에 합덕의 상점에 사환으로 취직한 것이 사회의 첫출발이었다. 18세때에 일본의 강제징용으로 “하까다” 탄광으로 끌려가 생지옥살이를 3년간을 하였다. 8.15해방이 되자 탄광에서 일하던 동포 1백여명이 배를 전세내어 부산에 도착하였는데 그때 감격과 기쁨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시다. 그때 배 임대료 6만앵(지금 돈으로 계산하면 6천만원 정도 되었을 것이다) 동포광부들이 걷어서 지불했다고 한다.

윤희명 할아버지는 징용살이 중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라 인간이하의 천대를 받고지낸 것이었다.

그게 한이 되어 천안에 창설된 국방경비대 13연대에 입대를 하였다. 경비대에서 어느정도 글을 깨우쳐 문맹을 겨우 면할때 제주도 폭동사건이 일어나 토벌작전에 참가하였는데 몇달 후 작전이 끝나 제대특명을 받았다고 한다. 문맹이어서 제대를 시킨것이라고 말하면서 아쉽다는 여운을 남기신다.

젊었을 때에는 어떤 일을 하셨느냐고 물으니 합덕장, 고덕장, 덕산장으로 다니면서 생선을 팔았다고 하신다. 합덕에서 백리길이나 되는 태안에 자전거를 타고 가서 생산을 가득 받아다가 장터를 다니면서 좌판소매상에게 넘겼다고 하신다. 그때 당진 용연리에 사는 강월순이라는 15세의 처자에게 장가를 들었는데 부인도 합덕장에서 좌판을 놓고 생산장사를 했다고 일러주신다. 내외분이 열심히 장사하여 돈을 마련해 지금의 집으로 이사도 하시고 딸 셋을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셨다. 그러나 넷째 애기를 출산하다가 산모와 애기 모두가 세상을 떴다고 착잡해 하시면서 목을 메우신다. 그게 지금으로 부터 26년전의 일이다.

8살, 6살, 2살짜리 딸을 혼자서 키우느라 갖가지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이웃에서 재혼하라고 여러번 중매가 들어왔으나 남에

게 자식을 맡길 수 없어 혼자서 오늘까지 살아오셨다. 딸들은 전부 장성하여 출가를 시켰다. 딸들이 부자는 아니지만 공직자로서 근무하는 사위들이 대견스럽다고 하시면서 몸은 비록 합덕에 있지만 마음만은 저 푸른하늘에 떠있는 구름위에 올려놓고 서울과 강원도에 살고 있는 딸들을 내려다 보면서 살고 계시는 것 같다.

윤희명 할아버지는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지만 조상들의 묘소를 지키기 위해 2년전에 유곡리 땅을 팔아 강원도 원성군 문악면에 6백여평의 임야를 사서 아버지, 형님과 형수, 또 윤희명 할아버지가 영원히 안식을 취할 유택도 마련하였다고 자랑하신다.

자식과 조카도 없어 당질에게 묘소를 관리하여 달라고 명의를 당질의 이름으로 해놓았단다.

윤희명 할아버지는 지난 삶에 후회없이 그리고 앞날의 두려움을 갖지도 않고 비록 불구의 몸이지만 정신적으로 여유스러운 삶을 살아가시는 분이다.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을 내는 할아버지의 앞날에 즐겁고 기쁨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서금구/당진시대 객원기자

합덕대건노인대학장

(0457) 363-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