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명희 할아버지
전쟁통에 처자식 생이별
괴로움을 달래려 닥치는 대로 막일
3년전부터 거동 못해
영양실조여서 침을 놓으면 위험하다고 한의사가 그냥 돌려보내더란다.
합덕읍에 거주하는 읍민이라면 원명희 노인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이름으로 모르면 사진을 보고서 ‘아! 이 노인, 어디서 본 사람인데...’하고 기억을 떠울릴 것이다. 원명희 할아버지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재산가도 아니며 왕년에 유명했던 명사도 아니다. 그저 50년 동안 합덕을 지키면서 막일로, 날품팔이로 집집마다 궂은 일, 더러운 일 마다하지 않고 도맡아 살아오신 분이다.
그렇게 하루도 쉬지않고 남의 집을 내집 드나들 듯하며 노동을 하던 원명희 노인이 3년전 부터는 꼼짝도 못하고 있다. 요즘은 운곡리 집에서 앉았다 섰다 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 고작이다. 원명희 노인은 삶을 포기한 듯 죽을 날만 기다린다고 하면
서 기자가 묻는 말마다 “무식해서”, “기억이 없어서”라는 말만 되풀이 하신다.
원명희 노인은 3년전 불의의 사고를 입고 팔, 다리가 마비되었다. 겨우 일어나 걸음마 배우는 아가들의 걸음걸이 정도밖에 발
을 떼어놓지 못한다. 이 무거운 몸을 끌고 하루는 읍내에 있는 한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러 갔었는데 침으로 다스리면 좋겠으나 기운이 허하고 영양실조여서 침을 놓으면 위험하니 기운을 돋구는 약을 먹고나서 침을 맞아야 한다면서 그냥 돌려보내더란다.
슬하에 자식하나 없고 불구의 몸으로 조석을 혼자 끓여먹고 지내는 형편이니 먹는 것이라고 오죽할 것인가. 이웃집의 도움으로 가끔 빨래도 해입고 먹거리도 갖고 오지만 날이면 날마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겠냐면서 공연히 눈동자를 허공에 맞추신다.
“목숨을 재촉하는 북소리 울린다.
해는 서산에 뉘웃거리니
황천길에는 주막도 없다는데
오늘밤 쉬어갈 객사 어디에 있느냐”
성삼문이 형장의 제물이 될 쯤 읊은 시귀절이 왜 여기서 떠오르는 것일까?
하늘도 무심하셔라.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다같이 허물투성이련만, 원명희 노인은 기나긴 삶에서 고달프고, 힘들고 병들었던 일이 허물이 허물 벗듯 하나 둘씩 용서도 되련만, 아직도 벗을 허물이 얼마나 많길래 영양실조 되어 침 한방 들어설 자리도 없게 되었단 말인가?
불경에 십시일반이라고 했다. 당진시대 애독자 여러분에게 감히 호소하는 것은 한사람이 천원씩이라도 희사하신다면 원명희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인 한약방의 침을 맞고 다시 마비된 팔 다리가 소생되어 옛날의 막일꾼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는 희망을 안겨드려 보자는 것이다.
“누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그 앞에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의 문을 닫으면 어떻게
하느님의 사랑이 그 사람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말과 혀로 사랑할 것이 아니라 행실과 진실로써 사랑합시다(요한 3.17~18)”
나이 많이 먹은 구세대? 사람들의 과거사가 대부분 같은 환경에서 이뤄졌듯이 원노인도 고향인 당진군 대호지면 조금리 고향을 떠나 합덕에 정착하여 살고 있을때 6.25전쟁이 터졌다. 강제로 의용군에 끌려갔다가 UN군 진격때 구사일생 도망쳐 집으로 왔으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생사를 알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서 이번에는 국군에 입대하게 되어 휴전이 될때까지 제대를 못하였으니 그 몇년간에 처와 딸둘, 아들 한명의 생사는 영영 아주 멀어져 가버린 것이었다.
기구한 운명의 원노인은 전쟁통에서도 적과 동지의 자리를 왔다갔다 했던 사람이다. 이런 괴로움을 달래려고 날이면 날마다 집과 집을 돌며 궂은 일, 더러운 일을 마다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50여년간 해왔으리라 믿어진다.
원노인이 지금 살고있는 집도 전에는 다 쓰려져가는 움막집이었는데 너무 낡고 낡아 부락에서 몇년전에 지어준 집이다. 단칸방에 언제 청소를 하였는지 고약한 냄새가 풍겨 잠시를 앉을 수 없다. 얼마전 숙직실에서 안덮는 이부자리를 깨끗이 빨아 갖다드렸으나 무거워서 덮을 수 없다면서 대낮에 따뜻한 봄기운이 완연한날씨에도 군불만 지피고 앉아 계신다. 할아버니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느낌을 받고 계실까?
우리 이웃인 원명희 할아버지는 오늘도 쭈그려 앉은 채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거기서 발자욱을 뗄 줄 모른다.
서금구/당진시대 객원기자
합덕대건노인대학장
(0457)363-19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