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기 호 (대호지 독립운동 선열유족회 부회장)
독립선열들의 날개없는 심부름꾼’
창의사(彰義詞)는 대호지면 조금리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대호지 4.4독립운동”에서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의 독립을 찾고자 맨손으로 독립을 외치다 왜경에게 총 맞고, 매맞고, 옥살이하고 또 옥사하는등 형을 받은 독립운동 선열들 577위의 신위(神位)을 뫼신 사당이다.
독립운동 선열들은 이나라의 용사들이고, 그 큰뜻은 세계에 알려졌으며 또 영원히 계승되어야 할 일이다. 쇄망한 나라의 국권을 찾아 목숨을 아끼지 않았으며 총칼에도 굴하지 않고 싸웠고 3천만 겨레의 희망을, 그리고 굳센 의지로 오늘을 탄생시킨 그들의 넋이 잠들고 있는 거룩한 장소이다.
그러나 창의사는 썰렁하다. 사당의 규모와 산만하게 방치된 주변의 모습은 참배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픈 가슴을 씹으며 발길을 돌리게 한다.
각 고속도로에는 고속도로를 건설하다 희생된 일꾼들의 위령탑이 하늘높게 올라간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조금리의 만세현장에 세워진 창의사 주변에는 기념탑은 고사하고 안내팻말조차 볼 수 없다. 눈길 닿는 곳마다 아우성치는 생명의 소리, 그 소리는 자주독립국가임을 외치는 함성이요, 피의 용솟음이었고, 터져나온 만백성의 육성이 진동했던 조금리 현장이 아니었던가.
수오지심(羞惡之心)은 맹자의 말씀이다. 자기의 잘못을 부끄럽게 생각하라는 말씀이다. 인간은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에 수치감을 갖는 것이다. 수치심을 느끼지 못할 때 후안무치(厚顔無恥)하다고 하고 철면피(鐵面皮)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다.
성아우구스티노는 고백록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천지신명(天地神明) 앞에 부끄럽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
조금리 창의사 사당과 천의장터의 그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 것이다. 577위를 뫼신 창의사 주변의 경관을 새롭게 단장하여 많은 참배객들이 올 수 있게끔 대책이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기호씨!
대호지면 도이리는 의령남씨 충창공파의 후예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10여대째 살고 있는 마을이다. 지금도 80여호의 3백여명이 살고 있는데 대호지 4.4독립운동 당시 남씨들이 주축을 이루었던 것이다. 남상은, 남정, 남주원, 남계창, 남상각, 남상락등이 있으며 이분들은 독립유공자로서 서훈을 받은 분으로 건국훈장 12명과 대통령표창 6명으로 모두 18명이다.
남기호씨는 남상은씨의 손자로서 “대호지 독립운동 선열유족회” 부회장의 중책을 맡고 실질적인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유족회원 39명.
희랍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가 날개달린 모자를 쓰고 날개달린 신발을 신고 제우스신의 심부름을 다니는 사자(使者)였듯이 남기호씨는 대호지 독립운동 선열들을 위해 날개달린 모자나 신발도 없이 자기의 돈과 시간을 사용하면서 십수년간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선열들에게 서훈을 바쳤으며 조금리의 창의사와 천의장터에 독립운동 기념탑을 세우는 데 밑거름 역할을 충분하게 해낸 사람이다.
남기호씨!
인간은 분명히 미래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도, 각자 모든 사람도 미래를 향해 살면서 설계하고 활동함으로 희망을 갖고 살고 있는 것이다. 남기호씨는 오로지 대호지 독립만세운동 선열들의 공적을 발굴하여 후세에 기리 남겨놓기 위하여 젊음을 불태웠으며 지금도 더 많은 분들의 기록을 발굴하는 데 전념하면서 살고 있다.
남기호씨는 어려서부터 어른들에게 들었던 기록을 정리하였고 이것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으러 면사무소, 군청, 법원등으로 뛰었다. 또 부산까지 내려가 정부기록보관소의 창고를 뒤져가면서 재판기록을 발굴, 복사본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이 모든 기록을 정리하여 보훈처에 서훈 신청을 내었으니 1980년부터 대통령표창을 위시하여 1995년도까지 건국훈장 애족장, 애국장 등으로 추서를 받게끔 된 것이다.
남기호씨!
남기호씨는 오래전부터 농촌의 변혁과 개혁의 필요성을 실감하여 상록수 정신으로 농촌운동을 펴기위해 필경사에서 심재영씨가 운영하던 “상록학원” 1기생으로 1967년도에 졸업을 했다. 그리고 공무원으로 시작하여 26년간을 공직에 몸담고 있다.
대호지면 조금리가 4.4운동의 발상지이고 모든 선열들이 대호지면에 거주했던 분들인데 초라하기 짝이 없는 사당 창의사이고 보니 독립유공자의 직계손이며 유족회 부회장을 맡은 남기호씨로서는 각오도 대단하다. 유공자들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선양운동을 전개하겠다는 것이다. 또 아직도 유공자로서 서훈을 못받은 분들의 자료를 발굴하여 보훈처에 서훈신청을 내는 데 힘을 쏟겠다고 한다.
남기호씨는 4.4독립운동 발상지며 실제로 만세운동을 벌였던 대호지면 조금리에 위치한 사당 창의사를 중심으로 성역지로 지정받는 일과 기념탑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계획, 그리고 전국적인 문화행사로 전야제의 다채로운 행사와 운동에 가담한 모든 분들의 명예회복을 시켜드리는 일에 일생을 바치겠다는 각오와 집념에 넘쳐 흐르고 있다.
그는 모든 군민들에게 독립유공자들의 선양사업에 아낌없는 협조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