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영 창(정미면 승산리) 당진꽈리고추생산자 군연합회장

연구하는 개척자, 농민을 위한 전투원

농민출신으로 유일한 농정평가위원

돈 많은 유태인이 아들과 둘이 살고 있었는데 아들은 멀리 떨어진 예루살렘에 유학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갑가지 병 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자 노예를 불러 말을 했다. “유서를 써야겠다.” 아버지는 유서를 쓰고 죽었고, 노예는 그 유서를 보고 깜짝 놀랐던 것이다. “내가 죽으면 내 전재산을 나의 충직한 노예에게 준다. 다만 아들에게는 내 재산중 무엇이든 그가 바라는 것 한가지만을 가지도록 한다” 노예는 그 유서를 소중하게 간직하였음은 물론이고 이제 자기가 물려 받게 될 주인의 재산을 한푼도 축나지 않게 잘 간수하였던 것이다.

며칠후 급보를 받고 예루살렘에서 달려온 아들에게 노예는 유서를 내보였다. “아니 아버지께서 이러실 수가 있나. 참으로 아버지도 무정하시지...” 아들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장례를 치르고는 아버지의 친구 한분을 찾아가 하소연을 하였던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평소 저를 끔찍이도 사랑하셨는데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아버지의 친구분은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무릎을 탁 치고는 “참으로 자네 아버님은 슬기로운 분이셨네” “슬기로우셨다니요?” “내 말을 잘 들어보게나. 자네 아버님은 많은 돈이 있으셨네. 그런데 그 돈을 두고 그냥 돌아가시면 어떻게 되었겠나? 돈이란 사람의 마음을 유혹하는 것이니 자네 집 노예가 그 돈을 그처럼 간수하였겠나? 자네가 없으니 돈을 몽땅 가지고 도망을 쳤거나 아니면 다 써버릴 수도 있겠지.” “아! 그렇겠군요.” “그렇지. 그런데 자네에게는 재산중 한가지를 마음대로 골라 가지라고 하셨으니 노예를 갖겠다고만 하면 되는 것일세. 노예의 재산은 곧 주인의 재산이니까 말야.” “결국 제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준 것이었군요?” “그렇다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돈이라는 것은 마음을 유혹하여 흑심을 갖게하는 것이다. 지금 온나라가 떠들썩한 ‘5천억 비자금’문제도 이와 결부해 생각해볼 일이다.

김영황씨는 시설원예를 67년부터 시작했다. 무려 30년전 혼자서 외롭게 꽈리고추를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였는데 그 당시 이웃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혼자서 생산하여 서울 용산 채소시장에 팔아야하는 어려움도 무척이나 겪었다. 그후 10년이 지난 83년도 6월부터 13개 부락의 농가들이 재배하게 되며 협동권을 이루는 시초가 된것이다.

지금은 당진군내 농가에서 꽈리고추를 생산하지 않는 농가가 없을 정도로 널리 파급되었다. 가락동 시장의 70%를 점유하는 당진산 꽈리고추는 년간 소득이 80억원에 이르는 단일품종중 큰 생산품이 되었다.

주자(朱子)는 ‘정신이 한 목표에 집중되면 무슨 일이든 이룬다’고 하였으며, ‘산다는 것은 느끼는 것이며 느끼는 것은 어떤 사물이던 그가치를 포착하게 되는 것이다. 가치란 사물의 소중한 성격이며 사물로 하여금 존재할만한 것, 즉 매력있는 것이 되게 하는 것’이라 말했다.

김영황씨는 꽈리고추의 육묘분양에도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했다. 초창기 육묘분양 시기에는 멀리 서산, 예산등지의 농민들이 육묘분양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지난날의 일화를 삽입한다. 그리고 지력을 높이기 위해 가정용 보일러를 땅속에 묻고 재배한 것도 김영황씨가 최초로 개발한 연구이다. 이렇듯 연구를 거듭하면서 과학영농으로 농사의 도(道)를 다져가고 있으며 지금은 늦가을에 마지막 벼를 수확하고자 콤바인더에서 내려올 시간이 없이 바쁜 일과이다.

어떤 물건을 처음 얻었을 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던 것이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면서 뜻밖에도 값진 것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의 예를 보면 석유도 1백여년전만해도 무가치한 것이었다. 1828년 켄터키주의 버크스필 근처에 있는 리틀, 네녹스크릭의 하상(河床)에서 올드 아메리칸웰을 뚫을 때 사람들의 원래의 도는 소금물을 얻는 것이었다. 그런데 소금물이 아니고 난데없는 기름이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자 우물을 뚫던 사람들은 자기네들은 이제 망했다고 하면서 기름이 마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이렇듯 자연은 우리에게 무궁무진한 값을 주고 있는데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있게 하는 것이 큰과제라고 생각한다.

김영황씨는 94년 6월에 정미면 환경보존위원회장도 맡으면서 자연환경 사랑에 큰 관심을 갖고 일을 하고 있다. 몇년째 가, 부에 대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안덕공원묘지에 대해서도 “당국은 농민들의 주거와 환경등을 평가하지도 않고 허가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면서 여러가지 법조항의 그물을 치고 거기에 걸리지 않으면 허가를 하는 것이다” 라면서 앞으로 정미면내에 들어오는 크고 작은 사업장은 환경보존위원회의 사전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포문을 연다.

정미면 환경보존위원회 회원 110명은 봄, 가을 면내 구석구석 대청소를 실시하며 쾌적하고 깨끗한 정미면을 옛모습 그대로 환원시키는데 주력하고 있으며 이로인해 모든 면민들이 스스로 환경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었다고 자랑도 곁들인다.

김영황씨는 93년 7월 가락동 시장에서 당진농민들이 생산한 꽈리고추 2만관의 가격조절을 위해 보름이상 투쟁을 벌인 역전의 용사이기도 하다. 농민의 공동손익을 위해 공동샌산, 공동판매와 생산농가에서도 품질을 높이고 포장도 양심적으로 균일품으로 포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영황씨는 매사에 적극적이며 연구하는 농민으로서 나와 더불어 이웃들에게도 이익을 주는 헌신적인 사명감과 정열을 쏟고 있다. 이런 것들이 사계에서 인정받아 농수산부에 농정평가위원으로 농수산부장관으로부터 위촉받아 농정부문에 실질적이고 살아있는 자문을 하고 있다. 농민들의 대변인이고 또 농민들을 위한 전투원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농정평가위원은 12명, 대학교수, 전문연구원으로 구성되었는데 유일하게 농민출신으로는 김영황씨가 평가위원이다. 우리모두 자랑으로 생각할만하지 않은가.

정미농협의 정상무님께 취재에 협력하신데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