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순 옥 신평면 신송리 2구

자전거 한대로 화합마을 만든 비결

필자가 어렸을 때 자라던 산골은 동성촌(同姓村)으로 약 70호가 사방으로 둘러싼 얕은 산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던 곳이다. 먼 촌형되는 사람이 당시 농고(4년제)를 졸업하여 면서기로 근무하던 분이었는데 동네 꼬마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 인물이었다.

그 형이 농고를 졸업, 면서기가 되어서 그런것은 아니다. 꼬마들이야 면서기나 학교선생이 된것이 크게 문제될 나이는 아니었다. 다만 선망의 대상은 그 형이 우리마을에 단 한대의 자전거를 소유한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그 형이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그 모습이 그렇게도 멋지게 보이고 자전거가 그렇게도 부럽게 느껴졌다.

십오리가 넘는 면소재지의 학교로 등교할 때 꼬마들은 면서기의 자전거 뒤를 우루루 따라 뜀박질을 하곤했다. 사내녀석들은 책보를 어깨에 메고, 계집애들은 허리에 동이고 자전거 뒤를 따라 나섰다. 아침이슬이 풀잎에 맺고 오솔길에 자전거의 바퀴가 굴러가면 이슬도, 바퀴살도 햇살에 은빛으로 빛나며 반짝반짝 빛을 내는 멋진 장면을 연출했다.

그래서 자전거를 은륜(銀輪)이라고 했을 것이다. 꼬마녀석들은 바지가랭이가 풀잎에 맺은 이슬에 적셔져도 상관없이 자전거 뒤를 쫓고 뛰었다.

약 1년간을 자전거 뒤를 따라 뛰었을 때 나는 큰 결심을 했다. 용기를 내어 어머님께 자전거를 사달라고 매일 조르고 끝내는 자전거 안 사주면 학교에 안가겠다고 공갈도 했다. 그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며 항변이었다. 그러나 그뜻은 몇달후에 반이라도 성취되었다. 쇠머리를 사려다가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쇠꼬리를 들고 들어오는 어른들의 속사정과 같은 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꿈에도 자주 나타나는 멋진 자전거는 아니었지만 자전거 바퀴 하나가 내 손에 쥐어졌다. 그것도 자전거 바퀴살은 없고 고무타이어나 공기 튜브(Tube)도 없는 바퀴틀말이다. 그 바퀴를 대막대로 굴리며 시범을 보여준 사촌형은 요새 서울 학생들이 유행으로 갖고 다니는 “굴렁쇠”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굴렁쇠를 굴리며 학교에 가기 시작했으며 자전거 뒤를 따라다니던 꼬마친구들도 내 굴렁쇠 뒤를 따라 학교에 등교했다. 그 덕분에 하루사이에 나는 꼬마대장 자리에 올랐으며 면내에서 60년전 처음으로 굴렁쇠를 굴렸던 꼬마로 등장하게 된다.

류순옥씨!

류순옥씨는 신평면 신송리 2구 면계 마을에서 농사를 천직으로 생각하며 자식들을 키우고 사는 농촌의 며느리이고 아내이고 어머니이다.

금년 여름에 이웃에 살던 이종사촌이 이사를 가면서 이질녀가 타고 다니던 헌 자전거(국민학생용)를 불하를 받았다 아니 선물로 받았던 것이다. 류순옥씨는 처음에는 자전거를 만지작거리면서 망설이기를 몇번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외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큰 아들을 둔 나이에 이제 자전거를 배운다는 것이 그리 쉽게 결정이 날 문제로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느날 큰 용기를 내었다. 들일을 끝내고 선선한 밤에 누가 볼세라 마을로 들어오는 포장된 도로에서(외등이 있어 밝음) 혼자서 자전거 타기를 시작했던 것이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기를 거듭하다가 2~3일만에 거뜬하게 패달을 밟고 앞으로 가는 시원하고 기쁜 마음을 맛보는 순간, 무더운 여름밤에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감도는 짜릿함을 느꼈던 것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남이 알새라 쉬쉬하면서 밤에서 밤으로 자전거 연습을 했던 류옥순씨의 소문은 발도 없이 온동네로 퍼지게 되었다. 그후 마을의 주부들이 너나 할것없이 남편과 자식들의 자전거를 마을로 끌고나와 자전거 배우기에 경쟁을 했다. 환갑이 된 할머니도 있었다. 모두 19명의 주부들이 밤 8시부터 11시까지 마을안길 가로등이 훤히 켜져있는 시멘트 포장길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면서 자전거타기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당신은 못 배워”하면서 말리던 남편들도 부인들의 열성에 감동되어 자전거를 붙들어주며 요령을 알려주고 나사를 죄어주는등 마을전체의 사람들이 총동원되어 큰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와같은 열성으로 신송리 2구의 모든 주부들은 이틀만에 또는 늦어도 일주일 후에는 모두 자전거 타는데도 도사로 변했던 것이다.

류순옥씨는 며칠 먼저 배웠고 신송리에 자전거타는 바람을 불어 일으켰다는 이유로 코치선생까지 맡아야했다. 신송리 2구 부녀회원 25명중 21명의 주부들이 이제는 자전거 선수로 변모했다. 모든 부인들이 재현이(류순옥씨의 작은아들) 엄마 덕분에 자전거를 배워 기쁘다면서 양말, 수건등을 싸들고와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부녀회에서는 옷한벌을 선물하는등 모두가 기뻐하는 마당을 마련도 하였던 것이다.

신송리 2구는 자전거를 배운 후로 마을 사람들의 화합이 더욱 굳게 다져졌고 서로간에 작은 일이라도 서로 돕는 아름다운 풍경도 살아났고 집집마다 일치가 잘되는 모범적인 마을로 변해갔다.

자전거를 타면서 건강에 큰 보탬이됨은 물론이고 마을의 화합이 잘되고, 들어갈 때 시간을 절약하는등 일석삼조의 역할의 촉진제가 되었던 것이다. 공해없고 건강을 지켜주는 자전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