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와 염치를 아는 선량이 아쉽다

전 창 식 신평면 신송리 면계

어부지리(漁夫之利)! 삼국지를 읽어내려가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깨닫게하는 대목이나 마음의 고동을 치게 하는 대목들이 광산에서 금을 캐듯 무진장으로 쏟아져 나옴을 볼 때 실로 놀라움을 느낀다.

조(趙)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려 하자 소진은 이를 말리면서 조왕에게 이렇게 비유를 들어 말했다.

“제가 여기오는 도중에 길을 건너는데 가만히보니 모래위에 조개가 나와 있었습니다. 이를 보고 도요새가 그 살점을 쑤셔댔습니다. 조개는 요놈하고 껍데기를 닫고 도요새 입을 꽉 물고 놓지 않았습니다. 도요새가 하는 말이 ‘요놈아 2~3일만 비가 오지 않으면 넌 말라죽고 말테다’여기 질세라 조개가 대꾸했습니다. ‘뭐 너 잘났다고 떠드느냐. 이대로 있으면 너야말로 숨막혀 죽을거다’ 이렇게 서로 으르릉대며 한치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어부가 와서 냉큼 조개와 도요새를 잡아가 버렸습니다. 지금 조나라는 연을 치려합니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면 어부지리를 보는 건 진나라밖에 없잖겠습니까.”

한보사태로 온나라가 술렁거리면서 인사가 만사라고 하던 문민정부의 권좌주변의 인물들이 쇠고랑을 차고 구치소로 들어가는 꼴은 법위에 사람이 올라타고 나라를 다스린 탓도 그 무게가 많이 실려있는 듯 하다.

TK(대구쪾경북)가 무너져내리고 PK(부산쪾경남)의 인치(人治)들이 주위를 쌓고 있더니 “돈을 받아먹지 않았다” “저놈이 먹었을 것이다”하며 정국을 시끄럽게 하고 국가의 기본을 흔들거리게 하더니 나라가 존립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말이 촌부(村夫)들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전직의 두 대통령이 수의를 입고 법원을 출입하고 있는 판국에 똑같은 짓거리로 나라가 어수선하니 이에 득을 볼 사람은 누구들인가. 세상에 비밀은 없는 것이다. 기왕에 백일하에 들통이 날 것이라면 국가의 위기를 뚫어가기 위해서라도 지위가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두 백기를 들고 국민들의 심판을 받는 것이 현명하고 나라의 위기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라고 본다. 이런 때 나 개인을 죽이고 국가를 살리는 살신성인이라도 하면 의로운 시민으로 존경받을 것이다.

전세계의 가톨릭 신도들은 지난 2월 12일(재의 수요일)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에 참석을 했다. 우리모두는 삶의 태도를 바꾸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된다.

이것은 우리들의 책임과 의무이다. 나 혼자만을 위하는 이기심에서 벗어나 국가와 이웃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쾌락을 이겨내는 단식도 하고 참된 이웃과의 형제애를 나누기 위해 자선, 나눔을 가져야 하고 자기자신을 맑게 드러내야 됨을 인식하고 마음에서부터 참회의 뜻을 담아 머리에 재를 얹어야 될 것이다.

전창식씨!

전창식씨는 천주교 신송리 공소회장을 맡고 있다. 공소(公所)는 천주교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지역 소공동체를 가리키는 장소로서 신송리 공소의 천주교 신도수는 약 120여명. 천주교 신합덕교회에서 관할하는 곳이다. 또한 전창식씨는 신평면 신송2구 면계 노인정의 노인회장도 겸직하고 있는 지역사회의 원로이다.

전창식씨는 면계부락, 20여호가 모여 사는 마을에서 선친 때부터 물려내려온 논밭을 가꾸면서 74년째 한 장소에서 큰아들 내외와 손자등 한지붕 3대가 사는 우리전통 가족제도를 소박하고 우직스럽게 면면히 지켜온 분이다.

전창식씨는 20세 청년시절 일본인에 의해 일본땅 홋가이도 유바리 탄광으로 징용되어 만 4년간 탄광의 광부로 막장생활을 했다. 강제적으로 일본에 끌려가 일본을 위해 노동을 했음을 자책하여 광복후 조국의 번영에 일조하기 위해 46년도에 전남 광주에 있는 국방경비대 20연대에 입대하여 군인생활을 했다. 입대후 여수쪾순천 반란사건때 전투에 참가, 부상을 입고 제대했다.

전창식씨는 혈기왕성하던 청년시절 집을 떠나 객지생활 7년을 끝으로 50여년간 집을 떠나지 않고 농업에 전념하면서 슬하에 아들 7형제를 두었다. 큰아들 내외는 가업인 농업에 종사시키고 나머지 6형제들은 각자의 적성에 따라 일터를 찾아 객지로 떠나 나라의 큰 기둥으로 활동을 시켰다.

전창식씨는 배움도 짧고 오로지 농업에만 전념하였다. 62년도에 천주교에 입교했다.(세례명 야고버) 입교동기를 물으니 “농업이란 자연에 의해 자연에 순응했을 때 결실을 보게 되는 것이지 자연을 거슬러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그런 대자연에서 문득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힘에 의해서 등뒤로부터 내가 지탱된다든가 명령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으며 그런 느낌이 있을 때 마음의 평화가 오며 농사도 손쉽게 됨을 경험으로 터득했다. 바로 그 힘이 하느님이라 직감하여 천주교에 입교하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떡값, 정치자금이란 이름으로 몇천, 몇억을 받아 챙겼으면서도 얼굴도 변치않는 작금의 정치인들, 온통 나라를 뒤엎어 놓고도 딴청피는 사람들, “법에 위배되지 않는 행동이면 무슨 행동이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법률은 사회공동체에서 여러 사람들이 지켜야 할 점, 두드러진 것만 골라 정한 것이다. 이러한 것까지 일일이 법으로 규제하지 않는 것은 각자에게 도의심과 염치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세비가)

도의란 도덕상의 의리를 말하는 것으로 사람으로서 꼭 지켜야 할 올바른 길을 의미하는 것이며 염치란 조촐하고 깨끗하여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일컫는 말이다. 지금 그네들이 범하고 있는 죄목은 도의와 염치에 해당하는 법을 범했음을 알아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