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기 향 서야중학교 양궁감독

삶이란 사람에게 정성을 쏟고 사는 일

유태인의 탈무드에 “재산이라는 친구는 죽으면 집에서 작별하고, 자식들은 장지까지 와서 작별하고, 선행은 사후까지 동행한다”고 했다. 재물은 죽을 때 싸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고 엄히 꾸짖는 말로 알아듣고 있다.

요즘들어 보는 것들이 세인들을 놀라게 하는 천문학적 숫자의 돈을 챙긴자들의 비리사건인데 불가사의한 그들의 행실을 신문에는 “노태우 신드롬”이란 새낱말로 등장시켰다.

신드롬(Syndrome, 증후군)이란 본래 통계학적인 지식인데 몇몇가지 증상들이 늘 함께 존재하거나 그 원인이 분명치 않을 때 붙이는 명칭인 것이다.

사람들이 지구상에 생존하면서부터 범죄는 함께 있었던 모양이다. 노아홍수의 신화를 읽어보면 사람들의 모든 행동이 너무나 썩어 무법천지가 되어 온 땅덩어리에서 고약한 냄새를 피우고 있었다. 야훼는 세상이 막판에 이르렀다고 생각, 큰홍수로 땅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였다. 그러나 노아는 올바르고 흠없는 사람이다.

야훼는 노아에게 큰 배를 만들어 가족들과 가축들을 데리고 배에 타라고 명령한다. 노아가 준비를 끝내자 폭우가 쏟아져 홍수가 났다. 밤과 낮으로 비가 40일을 계속하니 천지개벽을 이루는 대홍수였다. 세상을 물로 뒤덮은 후 야훼는 노아에게 약속을 한다. “다시는 홍수로 모든 동물을 없애버리지 않을 것이고 다시는 홍수로 땅을 멸망시키지 않겠다”

그리고 그 징표로 하늘에 무지개를 걸어놓겠다고 계약을 맺는다. 쏟아지는 비끝에 오색영롱한 무지개, 생각만하여도 마음이 들뜨는 현상이다. 무지개를 한문으로는 천궁(天弓)이라 쓴다. 하늘에 걸려있는 활로 보았던 것이다.

장기향씨!

장기향 선생은 서야중학교에 93년 양궁부를 창설, 감독을 맡고 시골에 있는 중학교를 양궁부문에 있어 일약 전국적인 명문 중학교로 격상시켰으며 그 이름을 높은 곳으로까지 끌어올리는데 일등공신인 체육담당 선생이다.

보통 사람들이 세상사는게 꼭 무엇을 이루고 남에게 보여주기위해 사는 것만은 아닌 것이다. 다만 자기가 맡은 책임과 의무에 최선을 다하고 살기를 바라면서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 목적도 달성하고 더불어 명성도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삶이란 어떤 일이나 사람에게 정성을 쏟고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장기향 선생은 이웃에 있는 국민학교의 양궁부 학생 3명이 중학교에 입학하게 됨으로 93년 3월에 처음으로 중학교에 양궁부를 창설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양궁부를 학교당국에서 맡으라고 권유했을 때 무척 망설였다. 대학에서는 지도자의 길을 가기위해 체육교육학과를 이수했지 어떤 특종의 운동을 전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양궁부를 맡기까지 힘을 준것은 동기생중 양궁의 국가대표로 국제 각종대회 금메달리스인 김진호 선수와 가깝게 지낸 터수다.

원래 시작이란 처음부터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시작에는 두려움 못지않게 설레임도 마음에 스며들게 마련이다. 장기향 선생은 양궁부를 맡겠다고 수락한 후 자기 스스로 마음의 수양부터 기르기 시작했다. “좋은 감독밑에 좋은 선수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운동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양궁은 마음의 욕심을 온전하게 없애버리고 정신집중이 우선 과제인 것이다.

선수가 활을 어깨에 메고 과녁을 향해 시위를 당기는 시간은 불과 4~5초에 불과한 운동이기에 더욱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것이다.

장기향 선생은 어린 학생을 2개월간 지도한후 93년 5월 전국소년체전에 출전했다. 선수들의 시합 적응력과 서야중학교의 명함을 체전에 내기위한 것이었으나 뜻밖에 단체 3위의 입상을 한것이다. 그로부터 학교의 정규수업을 끝내고 밤 9~10시까지(양궁장에 라이트 시설이 되었음) 선수들과 함께 있었다. 보통 선수 1명당 하루 300발이상의 화살을 날리는데 옆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장기향 선생은 학창시절에 읽은 “인간은 오직 가슴을 통해서만 똑바로 볼 수 있다. 본질적인 것은 눈으로 볼 수 없다”(생덱쥐페리의 작품)라는 대목이 언제나 마음속에서 맴돌고 있다고 말한다.

활을 당기는 선수옆에 서서 선수의 자세를 보면 몇점에 맞는다는 감을, 또 화살의 소리만 들어도 어느 과녁에 꽂힐것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게 되었다고, 3년간 감독생활의 소득을 말한다.

우리 역사중에 문화가 가장 찬란하던 시대는 신라의 선덕여왕, 그리고 진덕여왕 때였다. 또 영국 역사에 있어서는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과 19세기 빅토리아 여왕때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로지 여왕들의 총명과 지혜스러운 은덕의 결과라고 믿고있는 것이다.

장기향 선생이 3년간 지도한 선수(홍성칠, 인문진)등은 각종대회에 상위입상을 하여 지도의 보람을 느끼고 있으나 고등학교에 양궁부가 없음을 아쉬워한다. 각종대회의 시합장면을 비디오 촬영하여 연구하고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어려움과 기술적인 결함이 있으면 동기생인 김진호 교수와 선배인 오영수 감독(홍성군청 양궁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배운다고 한다.

어린선수들의 누나로서 선생으로서 서로의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고 선수(지금 9명)들의 정신력과 선수로서의 승부욕을 키우는데 온 정신을 기울이고 있는 장기향 선생이 서야중학교에 버티고 있는 한 서야의 양궁부는 각종시합에서 가장 높은 계양대에서 깃발이 휘날릴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