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도 막히고 말도 막혔지만 35년 시어머니 병구완한 어진마음
이 효 순씨 (순성면 백석리)
공자님의 73년간의 생애를 간단하게 적어본다. 공자님은 지금으로부터 2547년전(기원전 552년)에 탄생하셨다. 중국 춘추시대의 위대한 사상가요, 3천명의 제자를 가르치신 훌륭한 교육자이셨고 경국제민의 큰 뜻을 품고 여러나라를 거치면서 여러 제왕들에게 인정(仁政)과 덕치(德治)를 연설하신 위대한 정치가였다. 특히 동양(한국, 일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유교의 시조인 것이다.
공자께서는 지금의 산동성인 노(魯)나라의 수도 곡부(曲阜)에서 태어나시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 곡부에는 공자묘와 대성전(大成殿)이 있으며 공자의 자손들이 사는 공부(孔府)가 있고 소나무가 우거진 숲에 공자의 무덤이 있으니 이것을 공림(孔林)이라 하며 중국에서는 가장 유명한 명소중의 명소로 꼽고 있는 것이다.
공자께서는 자기의 사상과 생활, 인격과 인생관, 가치관을 간결하게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도에 뜻을 두고 덕을 근본으로 삼고 인에 의지하여 예 속에서 논다”
공자님의 근본원리는 인(仁)인 것이다. 인간이 배우고 닦아야 할 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으로서 인은 덕중의 덕이며 인은 덕의 근본이고 원천이며 모든 덕이 인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인은 덕의 뿌리이며 공자 사상의 중심적 개념인 것이다.
3월 21일은 공자탄생 2547년 춘기석전제를 올린 날로 전국의 유림들은 각 고을의 향교에 모여 제를 지냈으며 금년은 유림본부에서 문체부에 종교법인 신청을 낸 뜻있는 해로 여기 간략하게 공자님에 대한 것을 써보았다.
이효순씨!
이효순씨는 어려서 홍역을 앓다가 귀가 들리지 않았다. 자연 말도 못하는 청각장애와 언어장애가 되었던 것이다(귀머거리, 벙어리). 그러나 친정부모들은 귀엽게 때로는 엄하게 교육시키며 키웠으며 어른들께 효를 하는 것이 백가지 덕의 근원이라는 뜻에서 효순(孝順)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서산 고을에서 착하게 컸으며 귀엽게 자라던 이효순씨는 22세때 순성면 백석리 김봉래씨에게 시집을 왔다. 김봉래씨도 청각, 언어장애자였다.
이효순씨는 가난한 시골농부에게 시집을 오니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기만 하였다. 남편인 김봉래씨와는 말로 의사를 통하지는 못하지만 서로간에 눈치로, 마음으로 자기들의 뜻이 전달되어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시어머님이 계시고 시동생, 시누이가 함께 살고 이웃들간의 겪었던 어려움이야 어떻게 글로 표현을 다 할 수 있겠는가.
이효순씨가 시집와서 2년이 지났을 때 시어머니께서 중풍으로 몸져 눕게되었다. 음식을 이효순씨가 떠넣어야 했고 대소변도 받아냈다. 그것도 1, 2년이 아니고 어마어마하게 35년을 한결같이 해냈던 것이다. 시어머니께서 행여나 미안해 할까봐 웃는 낯으로 매일매일의 수발을 들었던 것이다.
이효순씨의 시아버지는 6.25 전쟁때 인민군에 의해 납치당했다. 당시 면천(직전 순성) 면장이었던 김낙용씨이다. 김낙용씨가 인민군에 납치되어 생사를 알지 못하고 지내던 시어머니는 화가 솟구치고 극에 달해 한을 풀지 못하여 결국 중풍으로 쓰러진 것이다.
가난해서 약이 변변치 못해 35년간을 누운 시어머니 수발에 35년. 94년도에 93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뜨시는 날까지...
석탄광의 막장에서 일하는 광부들은 두겹 하늘아래 살고 있다고 한다. 푸른 하늘과 막장의 검은 하늘이 그것이다. 그리고 광부의 아내는 시름의 하늘이 더 붙어 세겹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듣지 못하고 말을 못하며 시어머니 병수발 35년의 이효순씨는 몇십겹의 하늘을 덮고, 이고 살았겠는가.
너와 내가 세상의 삶에 있어서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컴플렉스를 느끼며 살고 있다.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발목을 잡히는 경우를 컴플렉스라고 하는 것이다. 멀쩡한 사람들도 시시때때로 느끼며 사는 컴플렉스를 언어,청각 장애자인 이효순씨는 냉가슴앓이의 연속이었던 것으로 짐작할 뿐인 것이다. 그러나 이효순씨의 표정은 밝고 웃음을 띠는 어질고 착한 성품의 표정 그것이다.
이효순씨는 남매를 두었는데 딸은 직장인으로 서울서 근무하고 있으며 아들 김한철(25세)씨가 부모님을 모시고 가사를 돌보고 있다. 95년도에 김한철씨는 영농후계자로 지정되었으며 금년에 영농자금을 신청하였으니 내년초에 자금을 받게 된다고 한다. 얼마안되는 논과 밭을 부치며 비육우 15두를 기르고 있다. 당장에는 영농자금이 들어가 가난을 면치 못했지만 성품은 부모를 닮아서인지 효자집에 효자난다고 장애인 부모를 극진히 공경하고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모범청년인 것이다.
“영농후계자 자금을 내년에 받게 된다면 젖소를 키우는 것이 큰 소망이다”라는 김한철씨의 소망이 이루어질 날도 시간문제로 눈에 들어온다.
이효순씨는 공부자 춘기석전제에서 면천향교에서 효부상을 받았다. 사회자가 마이크로 호명을 해도 들을 수 없고 효부상패의 문구도 읽을 수 없는 처지이지만 모든 것을 눈으로, 직감으로 알고 있는듯한 59세의 이효순씨! 젊음을 시어머니 병구완으로 지새웠던 나날들이 효부상패를 받아들일 때에 다 녹아버렸으면 하는 바램은 모든 참석자들의 한결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효순씨와 그 가족들의 앞날에 큰 기쁨과 즐거움이 있길 독자들과 함께 빌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