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등불로 너 자신을 등불로

지광스님 면천 영탑사 주지

당진군내에서 옛 사람들의 내음을 맡을 수 있고 선친들의 삶의 한자락을 짚어 볼 수 있는 곳이 면천 땅만한 데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필자로서는 역사학, 고고학, 미술사등 문화사적 유산에 대해 전공으로 공부한 바 없어 딱 떨어지게 이것이다 라고 말할 처지는 못된다.

면천에는 우리나라 옛 마을에 갖추어야 될 것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서원과 절집이 있고, 기타 유적지가 널려있고, 비록 일부이지만 성도 복원되어 있는 것이다. 면천을 걷다보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옛것이며 아스라히 지난날이 연상되어 머리속을 감돌고 있음을 맛볼 수 있어 좋은 곳이다.

영탑사! 석가탄신일 전날에 영탑사를 찾았다. 허공에 이어져있는 쇠줄에 붉은등, 흰등을 매다는 작업이 한창이다. 몇분의 신도와 주지 지광스님이 땀을 흘린다. 각등마다 불자들의 소원이 실려있기에 무겁게스리 축 늘어져 있는 기분이다. 고3 아들의 대학입학 기원, 사업 잘되게 해주십사하는 합장, 고희(70세) 노인의 무병장수등 등마다의 사연이 각각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할머니가 일러주시는 대로 대나무 껍질을 벗겨 조선종이를 발라 등을 만들었다. 촛불을 켜들고 초파일 전날 저녁에 절에 올라가 예불에 참석하고 그 등으로 길을 밝히면서 집으로 내려온 기억이 난다. 내가 올라간 절은 큰 절이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예불이 끝나면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다. 절에서는 일년동안 시주된 쌀을 모았다가 나누워 준 것이라고 들었다.

석가는 인도 가비라성의 왕자로 탄생하여 재물과 권력, 명예,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지만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해에 신음하는 많은 사람을 보고 어떻게 하면 일체중생을 이 끝없는 고뇌의 바다에서 구출하여 지혜와 자비와 행복의 인생을 살 수 있게 할까하는 문제에 몰두하게 되었다.

석가는 중생제도의 원대한 비원(悲願)을 품었다. 모든 생명을 일체의 번뇌에서 벗어나게 하는 길을 찾기 위해 구도의 길을 떠났던 것이다. 29세에 출가하여 6년간의 고행끝에 대각성도(大覺成道)하여 마침내 부처가 된다.

석가는 80세에 열반에 들기전에 제자 아난과 여러 불자에게 마지막 설법을 하였는데 “살아있는 자는 반드시 죽고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져야 한다. 내가 죽은 뒤에는 너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라”

영탑사 주지 지광스님!

“이웃들과 공동체적인 인식을 갖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 나 혼자만은 살 수 없는 것이다.”

바쁜날에 이것저것 묻는 데 서로가 짜증스러웠을 것이다. 화두를 던지며 밀려드는 신도들의 업무처리를 하면서 컴퓨터의 키를 두드린다.

화두(話頭), 화두는 긴 설명이 필요없다. 화두가 던져졌을 때 스스로 깨닫고 풀어야 하는 것이다. 화두란 것은 의문스러운 말머리를 잡고 늘어져서 오직 그것만을 의심하는 방법으로 정신일도하여 생각하다 보면 자연히 다른 모든 번뇌와 망상과 여섯가지 감관으로 쌓은 업이 녹아내려 활연대오하는 불가의 수행방법중 하나인 것이다.

지광주지스님이 속인인 기자에게 화두를 던진 것으로 생각하니 기분이 영 찜찜하였는데 경내에 안치된 마애불의 잔잔한 미소를 대신 받아들일 수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지광 주지스님! 영탑사의 깨달음이라 할 수 있는 법어는 “한순간을 참으면 백년 근심 더느니 자기 마음을 알아서 모든 일에 참아라”

절이란 고색창연 하고 허술하면서 짜임새가 있고 앞뜰에 탑이 서있고 석등이 하나 서 있어야 제맛을 볼 수 있는 것이 속인들의 느낌이다. 그러나 영탑사는 도비 8천5백만원을 들여 대웅전을 짓고 단청도 새롭게 했다. 대웅전만 홀로 달랑하니 서있고 좌우로 부속건물이 없으니 허전함을 헤아릴 수 없고 조립식으로 서있는 요사채는 새옷을 헌 천으로 기운 것 같아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다. 증축할 계획이 없느냐는 물음에 “아저씨 같은 분이 돈을 내셔야지요”하고 또 화두를 낸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등 모든 교인들이 기복신앙에만 매달려 있는 듯하다. 간밤에 꿈자리가 뒤숭숭하다고 봉투를 들고 성당에 찾아오는 사람, 대학에 떨어졌다고 시주한 돈을 되돌려 가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종교가 어느 문화현상보다도 값질 수 있는 것은 자기 혼자만의 체험에 그치지 않고 되돌리고 나누어 가지는 사회적인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자비란 기쁨을 나누어주고 슬픔을 거두어 준다는 뜻으로 이해되며 좋은 일에는 함께 기뻐하고 괴롭거나 슬픈 일에는 함께 신음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부처님의 말씀에 “재물과 이성을 바른 생각으로 대하라. 몸을 해치는 것은 이성보다 더한 것이 없고, 도를 잃게 하는 것은 재물에 미칠 것이 없다. 이성을 대하거든 호랑이와 뱀처럼 보고 몸소 금이나 옥을 가까이 할 때는 나무와 풀과 같이 보라”고 하였다.

어떤 종교를 믿던 또 안 믿던 내 마음안에 촛불을 밝혀 나를 사르면서 이웃의 어두움을 밝혀야 하며 소금이 스스로를 녹여 썩음을 막는 것과 같이 살신성인하여 밝은 세상을 만들자고 부처님 탄신일에 수십만개의 등에 불을 지펴 활활 타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너도 나도 온누리를 비추는 마음의 등불을 켜들고 부처님 탄신을 맞이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