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수필]
나의 말도 예뻤을까
안 의 수
한국문협 당진지부 회원
여울목문구 운영
그저 잠시 남의 옷을 빌려 입었거니 했던 문구점. 이제 돌이켜 보니 서당개 삼년 풍월을 곱배기로 읊지 않았는가. 아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내 눈높이도 아이들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문구점을 하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아침 이슬처럼 투명하고 초롱한 눈망울을 한 아이들과 매일 눈을 맞추며 순수한 빛깔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햇살처럼 고여오는 맑은 미소와 풋풋한 언어감각들을 귀동냥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날인가. 한 꼬마손님이 봄의 요정처럼 내 우울증까지 걷어내는 아주 예쁜 말을 하는 것이었다. 벚꽃처럼 환한 얼굴의 그 꼬마손님은 여전히 날 보고 언니라고 하질 않는가. 처음에 난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나이가 몇인데 저 어린 게 언니라니?’
곧이어 나에 대한 꼬마손님의 취조가 시작되었다.
“언니! 결혼했어?”
순간적으로 난 아이의 뒤 반응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는
“아니” 했다.
“응, 그런 줄 알았어.”
“뭘 보니깐?”
“응, 긴 머리보고. 우리 고모도 시집 안갔는데 머리가 아주 길다. 그래서 언니도 결혼 안한 줄 알았지.”
난 이쯤에서 끝내자 싶어 그만 실토를 하고 말았다.
“아니, 언니는 결혼했어.”
“그런데 왜 조그만 애들이 안보여?”
“응, 다 너보다 이만큼 크거든.”
“그럼 언니, 아줌마가 좋아, 언니가 좋아?”
이 귀엽고 깜찍한 꼬마손님은 내 심리파악을 한 것일까?
“응, 언니가 좋아. 앞으로는 왕언니라고 해. 알았지?”
순간적으로 약간 혼란스러웠지만 꼬마손님이 던진 언니라는 호칭에서 예전에는 못느꼈던 다정다감하고 상큼하고 풋풋한 싱그러움과 친근미마저 느끼게 되었다. 반면 아줌마라는 칭호에서는 왠지 좀 칙칙하고 무거운 느낌마저 드는 것은 왜일까?
난 그날 그 꼬마손님에게 세상을 읽어가는 말의 처세술을 한 수 배운 셈이다. 꼬마손님이 우연히 던진 말 한마디가 의외로 나의 20년 낡은 세월을 걷어내듯 나 또한 누군가에게 위안이 될 말 한마디쯤 생각해본다.
대화를 하다보면 같은 말을 해도 꼭 목구멍의 가시처럼 걸리는 말이 있는가 하면 들으면 들을수록 엔돌핀이 상승하는 말이 있다. 가급적 상대방이 들었을 때 엔돌핀이 상승하는 말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좌석에서 처음엔 만나서 얼굴보고 반갑다 서로들 부둥켜안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도 식사가 끝나가면서 이말 저말 본론으로 접어들면서 삶의 사각지대에 접어들면 이야기는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결론은 여자들의 이야기는 보편적으로 똑같이 한곳으로 빠진다는 것이다.
그 첫째가 남편이야기, 둘째가 자식이야기, 세째가 자기 자신이야기이다. 누구는 똑똑하고 훌륭한 남편 만나 호강하며 잘 지내는데 또 누구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 미래에 비전이 있겠다는 등 그런데 왜 넌 그렇게 살아야 하니 너를 보면 속상해 죽겠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지 않니... 등등.
어렵사리 만난 좌석에서 은근히 속을 아리디아리게 긁어대면 낯을 붉히고 뺨을 칠 수도 없고 욕을 할 수도 없다. 목구멍의 가시처럼 몇날 몇달을 두고 삭혀도 죄다 다시 넘어와 다시 되씹히곤 하는 말, 말, 말. 정말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옛말에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고 돈 안들이고 서로에게 엔돌핀을 상승시키는 좋은 말만 하고 살아도 부족할 마당인데 굳이 남의 인격을 삽질해가며 또한 자기 인격을 손상시키는 비열한 언동을 해야 하는지...
우리는 지금 21세기 인류의 화장터가 될 네덜란드의 안락사 문제를 운운하며 살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법으로 금하고는 있지만 언제 그 쇠사슬을 풀고 합법적으로 받아들일지 이 엽기적인 일들이 범람하는 오염된 세상일지라도 상대방에게 해서는 안될 말과 해서 될 말들을 가려서 할 줄 아는 말의 처세술을 배워야 할 것 같다. 또한 지독한 독설까지도 위트와 풍자가 섞인 유머로 각박한 삶을 좀더 여유롭게 대처했던 옛 선조들의 재치를 한번쯤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난 또 오늘 누구에게 어떠한 말들을 했으며 혹 맘에 상처가 될 말들은 하지 않았는지 일기를 쓸 때면 그때 그 꼬마손님이 생각나 나 자신에 대한 반문을 한번쯤 해보며 하루 일과를 덮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