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남 / 정의평화실천협의회 의장, 당진장로교회 목사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한 과학자이자 발명가였으며 사회·평화·인종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던 알프레드 노벨이 인류에 공헌한 사람에게 상을 주라는 유언과 함께 자신의 전 재산을 기증해 제정한 상이 노벨상이다.

노벨상이 제정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이자 새 천년의 첫해에 노벨상 가운데서도 최고의 영예를 지닌 노벨평화상의 수상자로 김대중 대통령이 선정되었다.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화해와 통일을 위해 한국에서 수 십년간 독재통치가 계속되는 가운데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망명과 연금, 투옥이라는 가시밭길을 걸었던 ‘인동초’의 삶은 노벨평화상의 빛나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분단 50년간 적대와 반목만을 거듭해온 남북문제를 흔들림 없는 대북 화해정책(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온 결과로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으며 민족통일의 첫걸음이 될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로부터 꼭 4개월 후인 10월13일 민주주의와 인권개선에 기여한 공로와 함께 투쟁이 아니라 화해와 화합의 노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었으며 세계적 지도자로 입지를 확실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한 개인만의 영광이 아닌 민주주의와 민족의 승리라 말할 수 있다. 55년의 오랜 고통, 그리고 미증유의 난관 속에서 화해를 갈망해온 남북의 민중들, 더 나아가 해외동포들까지 포함하는 한민족이 함께 받은 상이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조명록 특사의 미국방문 등 한반도에 새롭게 몰아치고 있는 화해의 물결은 남과 북의 공동의 노력으로 일구어낸 것이다. 북한의 개선된 입장과 능동적 대응이 남북화해를 이끌어내는데 기여한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번 노벨상은 내용적으로 남과 북의 승리라 할 것이다.

이번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세계냉전의 마지막 유물인 분단국가의 고통을 걷어내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역사적 계기가 마련되었다. 1920년대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식민지 인도 뿐 아니라 아시아에 강한 용기를 심어준 것처럼 이번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은 전세계에 고난받는 많은 민중들에게 힘과 용기와 희망을 주는 기회가 되었으며 분단된 우리 민족에게는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에 대한 강한 의지를 심어준 기회가 된 것이다.

이제는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고 차분이 통일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내부의 갈등을 먼저 치유해야한다. 김대중대통령은 이제 국내 지도자에서 세계적 지도자로 그 격이 상승됐다. 보다 대승적인 견지에서 만성적이고 소모적인 정쟁에 종지부를 찍고 야당과의 협조와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정책을 펴나가기를 주문한다. 조선시대이래 지속되어온 당쟁적 정치행태를 수준 높은 단계로 끌어올릴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는 것이다.

또한 진보와 보수의 갈등, 동·서의 지역갈등, 노사갈등 등 갈등의 벽을 넘어 국민통합의 상생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IMF라는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국정을 잘 이끌어온 대통령의 경륜을 인정하면서도 지역갈등과 반대세력을 끌어안지 못한 채 국민통합을 이루는데 성공하지 못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나 개인이 엄존해 있는 현실에서 개혁과 국민화합이야말로 이를 치유할 수 있는 처방인 셈이다.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가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정조대왕이나 다산 정약용의 개혁이 기득권 보수세력의 반대에 부딪쳐 어려움을 겪은 것처럼 우리 사회에도 개혁에 반대하는 뿌리 뽑아야 할 부정·부패세력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개인의 부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는 세력은 과감하고 지속적인 개혁으로 청산해야 할 것이다. 개혁이 때로는 실패하는 것처럼 보이나 역사는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화합의 정치로 정치적 성공을 이루어냈으나 구 소련의 서기장 고르바쵸프는 개혁의 실패로 몰락의 길을 걸었던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개혁 없이는 이 땅의 민주주의와, 경제성장 더 나아가 민족의 통일은 요원 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시밭길과 사선을 넘는 고난의 삶 속에서 신앙과 신념으로 평화의 세계적 지도자로 우뚝 선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우리민족의 자존심을 세우고 분단의 벽을 넘어 통일로 가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