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화학제품은 없어요”

박경애(61세)씨가 사는 집은 작은 아파트다. 그러나 그냥 보통 아파트가 아니다. 보통 아파크가 아닌 이유는 커서가 아니다. 호화로와서도 아니다.

우강면 북창초등학교 맞은 편에 있는 작은 평수의 이 아파트 한 칸에는 옛날이 와서 살고 자연이 와서 살고 있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신발장 위에 가지런히 보이는 옛날 항아리들이 이집의 첫 표정이다. 그 표정은 사그라드는 옛것의 주눅든 얼굴이 아니라 중요한 자리에 앉아있는 새로운 것의 당당한 얼굴이다. 그래서 이집의 첫인상은 좀 색다르다. 세련되지 않고 구식인 것들도 대접을 받는 분위기여서 그런지 그만 보는 사람 마음도 확 편해지고 만다. 현관 바닥 한쪽 귀퉁이에 있는 손바닥만한 꽃밭도 재미있고 앙증맞다.

하지만 이 정도는 막 문을 열고 맞아주는 안주인의 화사하고 밝은 얼굴을 보는 순간 ‘고상한 취미를 가졌구나’하는 생각을 하기에 알맞을 정도다. 그녀의 세련된 용모에 비추어 볼 때 이 소품들은 현대적인 가구의 얄팍한 멋과 화사한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애써 구색을 맞춘 ‘옛것의 향수’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발을 벗어놓고 집안으로 한발 더 들여놓으면 사정은 달라진다. 집안 구석 구석에 자리한 가구와 생활용품들이 한결같이 낡고 구식인 물건들이다. 보기싫지 않게 잘 배치해 놓았을 뿐이다. 화장실 입구 벽에 작은 화병들을 올려놓고 서있는 선반은 다리에 흰칠을 한 옛날 재봉틀이고, 그 위에 걸린 붙박이 꼬마선반은 세월의 때가 앉아 새까맣게 변한 재래식 나무선반이다. 보아하니 꽃을 꽂아놓은 꽃병이나 화분도 항아리 새끼 같은 것들이다.

작은 거실방으로 들어가니 사정은 훨씬 심하다. 화장대를 겸해 큰 창 한귀퉁이에 놓인 작은 탁자는 말이 화장대지 한쪽 어깨가 다 떨어지게 생긴 구닥다리다. 얼마전에 막을 내린 드라마 <육남매 designtimesp=8348>에나 등장했음직한 서민풍이다.

게다가 낡고 새까만 간이옷장이며 뒤주며 ‘참’을 이고 나르던 참반같은 게 거실방을 가득 메우고 있다. 확실한 것은 주인 박경애씨가 이것들을 악세사리로 장식한 게 아니라 실제 가구 대신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쪽에는 플라스틱 쓰레기통 대신 항아리가 놓여져 있었다. 다듬이돌도 생긴 그대로 선반노릇을 하고 있었다. 거실 한가운데 둥근 탁자는 다리 접는 옛날 밥상 위에 둥근 유리와 천만 깔아놓은 것이었다. 탁자를 씌운 그 천도 역시 박경애씨가 직접 손으로 떴다고 한다.

거실 한쪽의 훵한 벽은 멋있지도 않은 천으로 덮여있었는데 무명천에 간단한 수를 놓은 것이었다.

옛날 물건들이 좋아 간간이 모아놓고 구경한다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박경애씨는 이렇게 가구 대신으로 당당하게 내어쓰고 있었다.

박경애씨가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을 위해 누군가 땀을 흘리고 정성을 들였다는 것, 자연적인 것들만을 소재로 했다는 것, 그리고 돈을 들이지 않고 자신의 생활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내내 서울서 살았고 시골경험이라고는 중학때 잠깐뿐인데 저는 이런 게 참 좋아요. 시골빈집을 지날 때에는 버려진 것들이 아까워서 애지중지 모셔와요.”

그러나 듣고보니 그냥 좋은 것만은 아닌 듯했다. 목사인 남편을 만나기 전에 신학을 공부하기도 했던 박씨는 누구보다도 환경과 생태, 자연주의에 관심이 많은 터였다. 하긴 그냥 취미삼아 하는 일이라면 이처럼 생활 깊숙이 자연적인 것이 파고들 리 없었다. 자칫 궁색해보여 베란다 한쪽에 몰래 놓고 가끔 구경이나 할 법한 낡은 것들을 당당히 가구로 놓고사는 용기는 그것들에 대한 진짜 애정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것이리라. 허욕없이 단촐하게 사는 삶이 무엇에도 당당하게 만들어준 건지 박씨는 아이마냥 밝고 명랑한 분이었다.

베란다에도 옛날 것들이 가득했는데 멋삼아 늘어놓은 줄 알았던 항아리에는 온갖 채소와 과일들이 발효되고 있었다.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면 조미료도 설탕도 쓰지 않는 박씨는 단맛을 내기 위해 미리 오이를 설탕에 재어 발효된 것을 쓰고 있을 정도였다. 나는 그집에서 난생 처음 맨드라미 발효음료를 음료수 대신 대접받았다.

주방살림도 마찬가지였다. 그럴듯한 장식장에 그럴듯한 크리스탈 유리그릇들과 색색이 구색을 맞춘 그릇들이 진열된 그런 예사 주방이 아니었다. 거기도 낡은 것, 손으로 만든 것들 뿐이었다. 한때 잠시 지점토를 배우면서 만들어놓은 투박한 그릇들. 옛날 찬기와 종재기들. 흙으로 빚어 소박한 색을 입혀놓은 찻잔들. 장식장 대신 버려진 농가에서 주워다 깨끗이 손질해 쓰고있는 작은 선반이나 책꽂이가 다였다. 어느 집에선가 생각없이 버린 뜨개질용 면실을 주워다가 박씨는 촘촘한 땀으로 헹주를 몇 개나 만들어 쓰는지 모른다.

베란다 발판도 버려진 다듬이돌로 대신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박경애씨의 남다른 점은 직접 천연섬유에다 천연염색을 해서 옷을 만들어 입는다는 것이다. 무명이나 옥양목, 모시, 삼베 같은 천에 황토물이나 감물 같은 것을 들여 입는다.

본인이 입고있는 원피스와 목에 걸고있는 장식, 이부자리도 이렇게 만든 것이다. 녹차를 마시는 잔의 잔받침도 쓰고남은 자투리 천들을 알뜰하게 모아 황토물이나 쑥물을 들여 만들었다. 얼마전에는 마을 어르신 한분이 참거리를 덮는 낡은 보자기를 한장 주셨는데 천을 이어 만든 이음새가 너무 자연스럽고 이뻐서 그걸로 그냥 치마를 만들고 말았다. 구멍난 곳은 남는 천을 덧대어 주머니 모양의 장식을 만들어 감추었다.

이집에서 버려지는 것이란 없었다. 오히려 버려진 것들이 이곳에 와 대접받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못난 것들의 마음처럼 내 콧등이 시큰해진다. 이런 것들을 대접하며 사는 박경애씨가 왠지 고맙고 감동적이다. 투박하고 낡은 것들 속에서 웃으며 살아가는 박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각적이고 소비적인 경쟁의 대열에 휘말려든 우리들 가운데에서 박씨는 유독 자기의 눈과 자기의 감각으로 용기와 개성의 삶을 누리고 있는 사람같아 보인다.

“가끔 여성교실 같은 데 불려가 강연을 할 기회도 있는데요, 나는 당진삼베와 당진황토의 조화를 가장 강조해요. 이처럼 자연적인 것이 온전히 남아있는 곳이 많지 않거든요. 손으로 짜는 당진의 삼베와 붉은 빛이 도는 당진의 황토, 기막힌 자연의 은혜 아닌가요?”

박씨는 당진만의 것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일이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고 지역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김태숙 부장